제1편 혜교의 {고승전} 역경조

1. 구마라집의 출생

 구마라집은 중국말로는 동수(童壽)라고 하며, 천축(인도) 사람이다. 그의 집안은 라의 재상가(宰相家)였다. 구마라집의 할아버지 구마달다(鳩摩達多)는 성격이 매우 대범하고 뛰어나 사람들 중에서  명성(名聲)이 있고 중망(重望) 받았다. 아버지 구마염(鳩摩炎)은 총명하고도 아름다운 지조가 있었다. 마침 재상의 지위를 이을 즈음, 이를 사양하고 출가(出家)했다. 그는 동쪽으로 파미르 고원을 넘어 갔다. 구자국(龜玆國) 왕은 그가 부귀영화를 버리고 출가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매우 존경하고 사모하여 몸소 교외(郊外)에 나가 영접하고, 청하여 그를 국사(國師)로 삼았다.
 구자국 왕에게는 누이동생이 있었는데, 나이가 갓 스무 살이었다. 그녀는 재능 있고 이치를 잘 알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눈으로 본 것은 잊지 않고, 한 번 들은 것은 곧 외웠다. 또 몸에 붉은 사마귀가 있었다. 이런 상은 지혜 있는 자식을 낳을 것이라고 하여, 여러 나라에서 사람들이 그녀에게 장가를 들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모두 마다하였다. 그런데 구마염(鳩摩炎)을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 하였다. 왕은 그로 하여금 그녀를 아내로 삼도록 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는 회임하게 되었다. 회임하여 구마라집이 태중에 있을 때, 그 어머니는 신통한 깨달음과 빼어난 이해력이 평소의 배나 더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라집의 어머니는 작리대사(雀梨大寺)에 뛰어난 승려들이 많은데다, 도를 깨달은 승려가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곧 왕실(王室)의 귀부인들과 덕행(德行)이 있는 여러 비구니들과 함께 찾아가, 여러 날 동안 공양을 베풀고 재(齋)를 청하여 법문(法門)을 들었다. 구마라집의 어머니는 갑자기 스스로 천축(天竺)말을 통하게 되어 어려운 질문에도 반드시 깊은 이치를 끝까지 다 궁구(窮究)해 내니, 대중들이 모두 감탄하였다. 그곳에 달마구사(達摩瞿沙)라는 아라한이 있어 말하기를, “이것은 반드시 지혜 있는 자식을 회임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는 사리불(舍利佛)존자를 잉태했을 때의 증험(證驗)을 말해 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구마라집이 태어난 뒤에는 천축어를 잊어버리고 전과 같이 돌아갔다.
 얼마 후, 구마라집의 어머니는 출가(出家)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남편이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다시 아들 하나를 더 낳았는데 이름을 불사제바(弗沙提婆)라 했다.
 그 후, 성(城)을 나가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다가 무덤 사이에 마른 해골이 여기저기 흩어져 굴러다니는 것을 보았다. 여기서 괴로움의 근본을 깊이 사유(思惟)하여 출가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녀는 만약 머리를 깎고 출가하지 못하게 한다면,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게 6일이 지나고 밤이 되자 기력(氣力)이 실낱같이 쇠약해져 하마터면 다음 날 아침까지 이르지 못할 듯했다. 이에 남편이 두려워 출가를 허락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삭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전히 음식을 먹지 않았다. 왕이 즉시 사람을 시켜 삭발을 해 주니, 그제야 음식을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계(戒)를 받았다. 그녀는 선법(禪法)을 좋아하여 전심으로 정진하였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아 초과(初果)를 배워 터득했다.


  2. 라집의 학업과 유학

 구마라집은 나이 일곱 살에 어머니와 함께 출가하여 스승에게 불경을 배웠다. 그는 하루에 천 개의 게송(偈頌)을 암송(暗誦)하였다. 한 개의 게송(偈頌)이 32자(字)이니, 모두 3만2천 글자인 셈이다. 비담(毘曇)을 암송한 뒤에 스승이 그 뜻을 전수하였는데, 그는 즉시 통달하여 그윽한 이치를 펴지 않음이 없었다.
 당시 구자국(龜玆國) 사람들은 구마라집의 어머니를 왕의 누이이기 때문에 재물로써 공양하는 일이 매우 많았다. 어머니는 이를 피하여 구마라집을 데리고 떠났다.
 구마라집의 나이 아홉 살에 어머니를 따라 신두하(辛頭河)를 건너 계빈국(罽賓國)에 이르렀다. 거기서 유명하고 덕이 높은 법사(法師)인 반두달다(槃頭達多)를 만났다. 이분이 바로 계빈국(罽賓國王) 왕의 사촌 아우이다. 그는 덕이 깊고 맑으며 큰 기량(器量)과 재주가 있고 총명한데다 아는 것이 넓어 당시 독보적(獨步的)인 존재로 삼장(三藏)과 구부(九部)를 해박하게 익히지 않음이 없었다. 아침부터 낮까지는 손수 천 개의 게송(偈頌)을 쓰고, 낮부터 밤까지는 천 개의 게송을 외웠다. 이름이 여러 나라에 알려져서 멀리서나 가까운 곳에서나 그를 스승으로 섬겼다.
 구마라집은 계빈국에 이르러 곧 그를 스승의 예로써 존숭(尊崇)하였다. 그에게서『잡장(雜藏)』·『중아함경(中阿含經)』·『장아함경(長阿含經)』 4백만 글자를 배웠다. 반두달다(槃頭達多)가 매번 구마라집의 신통함과 빼어남을 칭찬하자, 드디어 그의 명성이 왕에게까지 흘러 들어가게 되었다. 왕은 즉시 구마라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