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1년 02월 - 입춘, 출가, 열반 - 행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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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산법화사 댓글 0건 조회 6,852회 작성일 19-08-26 15:47본문
나무묘법연화경
정유년丁酉年 닭의 해 입춘立春을 맞이합니다.
2017년 정유년이란 천간天干이 ‘정丁’이고, 지지地支가 ‘유酉’인 해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서 10간의 네 번째 정과 십이지의 10번째 유로부터 나온 것으로, 육십 간지의 34번째 해이기도 합니다. 전통의 음양오행설에서 병丙과 정丁은 붉은 색이고, 신申과 유酉가 빨간색을 의미하므로, 정유년은 빨간 닭의 해라고 합니다. 고대로부터 닭은 상서로운 가축으로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나 세상을 밝게 다스린다고 하여 혁거세赫居世라고 하였습니다. 옛날부터 닭이 울면서 하루가 열렸으므로 여명黎明을 뜻하고, 어둠을 의미하는 귀신이나 악령이 닭이 울면서 물러간다고 하여 축귀逐鬼의 상서로운 새로 통하였습니다. 또 닭은 문文, 무武, 용勇, 인仁, 신信의 다섯 가지 덕을 갖춘 동물로 입신출세와 부귀공명을 상징하기도 하였습니다. 닭의 볏은 관冠을 쓴 모습이고 볏은 벼슬과 발음이 비슷하여 관직을 가져다주는 동물로 여기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정유년의 뜻으로 올해는 정치적으로 밝은 정치, 경제적로 맑은 경제가 이루어져서 나라살림이 훨씬 좋아지는 희망찬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정유년 올해의 입춘은 2월 4일 입니다. 입춘은 1년 24절기 중에 첫 번째입니다. 소한·대한의 추운 겨울이 지나고 그동안 혹한 속에 있던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맞는 희망의 절기입니다. 입춘은 태양의 황경이 315도인 때로서 양력으로 2월 4일 무렵입니다. 농경사회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절기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왔습니다. 입춘에는 대문이나 기둥에 한해의 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글귀를 써서 붙이는 민속행사가 있습니다. 이것을 입춘첩立春帖이라 하며, 또는 입춘축立春祝이라고도 합니다. 궁중에서는 설날에 내전內殿 기둥과 난간에다 문신文臣들이 지은 연상시延祥詩 가운데 좋은 것을 뽑아 써 붙였는데 이를 춘첩자春帖子라 불렀습니다. 근래 절에서는 입춘불공을 드리며, 한 해 동안 가족들이 불보살님의 가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기를 기원하기도 한다.
입춘은 절기상 동지冬至를 정점으로 봄으로 가는 첫 문인 셈이다. 이후 우수雨水 경칩驚蟄 춘분春分으로 이어지는 봄의 기운은 청명淸明 곡우穀雨로 이어지면서 모든 사물이 왕성한 생장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입춘은 음력 2월이고 대개 음력 정월에 해당하여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때입니다. 우리 속담에 “입춘 추위는 꿔다해도 한다”고 하거나 “입춘에 장독깨진다”고 하듯이 꼭 매서운 추위가 한 두 차례씩 찾아오곤 합니다. 입춘의 민속으로는 양력 전날이 절분節分인데 이것은 철(시절時節, 계절季節)의 마지막이란 뜻입니다. 이날 밤을 ‘해넘이’라 부르고,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계절은 아직 겨울인지라, 마음으로는 봄이라지만 추위가 강하여 ‘입춘추위’라는 말이 있으나, 가시지 않은 찬 기운이 봄에 따사로움으로 변하기를 기대하는 심정에서 연유된 말이며 풍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입춘을 맞으면서 입춘축立春祝이 의미하는 좋은 일들이 가내家內에 가득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몇 가지를 제시합니다.
“입춘대길건양다경立春大吉建陽多慶”이란 글귀는 입춘을 맞아 크게 좋은 일이 있고, 새해가 시작함에 경사스런 일이 많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가장 많이 써서 붙이는 글귀입니다.
“입춘대길만사여의형통 立春大吉萬事如意亨通”이란 입춘에는 크게 좋은 일이 있고 모든 일이 뜻한 바 대로 잘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수여산부여해壽如山富如海”란 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유해지길 바란다는 뜻입니다.
“용수오복호축삼재龍受五福虎逐三災”란 용은 오복을 들여오고 호랑이는 재앙을 쫓아낸다는 뜻입니다.
또, 천하만민과 나라의 온 백성들이 편안하고 태평하기를 바라는 글귀로는,
“천하태평사방무일사天下泰平四方無一事”란 온 세상이 태평한 봄이요, 사방 어느 곳에도 탈이 없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국태민안가급인족國泰民安家給人足”이란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여 집집마다 풍족하고 사람마다 넉넉하다는 뜻입니다.
“우순풍조시화풍년雨順風調時和豊年”이란 절기가 순조로우니 화평하고 풍성한 세월이 되기 바란다는 뜻입니다.
또 부모님과 자손의 수명수복을 기원하는 글귀로는
“부모천년수 자손만세영父母千年壽子孫萬歲榮”이란 부모님은 오래 사시고, 자손은 길이 영화를 누리기 바란다는 뜻입니다.
“소지황금출개문만복래掃地黃金出開門萬福來”란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온갖 복이 들어오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정유년 입춘을 맞아 우리 영산 법화행자들도 매일매일 대길大吉하시고, 만사여의萬事如意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불교의 사대명절四大名節하면 부처님 탄신일(4월 8일), 출가일(2월 8일), 성도일(12월 8일), 열반일(2월 15일)을 들게 됩니다. 이중에서 불교가 탄생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 출가일과 영원한 적멸에 드시는 열반일이 2월에 들어 있습니다.
출가일이란 고대 인도의 카필라국에 왕자였던 고따마 싯다르타가 화려한 왕궁의 생활을 버리고 구도求道길에 나선 날입니다. 후일 가야성 보리수아래에서 성도成道하셔서 부처님이 되시고, 법륜法輪을 굴리셔서 일찍이 없었던 진리를 밝혀 불교가 성립된 것입니다. 부처님의 출가는 매우 숭고한 결단이었습니다. 고따마 싯다타는 왕위를 계승할 태자이셨고 그 총명한 자질로 인해 온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셨을 뿐 아니라, 후에는 야수다라라는 아름다운 부인과 사랑하는 아들 라후라가 있었으며, 궁중 생활은 화려하고 안락했습니다. 그러나 태자는 즐겁고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중아함경'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남이 늙고 병들어서 괴로움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도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다. 남이 죽는 것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나는 남이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을 보고 그것을 내일로 여겨 괴로워하고 싫어하며, 부끄러워하고 나의 젊음에 대한 교만, 건강에 대한 교만, 수명에 대한 교만을 버렸다.” 곧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괴로움에 대해 싯달다 태자는 스스로 눈을 뜨심으로 세속의 부귀영화富貴榮華는 물거품 같은 것임을 아셨으니, 출가의 선택은 참으로 현명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현명한 행동 그 이상의 것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더구나 태자의 신분으로서 왕궁의 생활을 포기하는 데에는 크나큰 결단이 따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두를 버리고 출가하셨던 그 용기는 곧바로 마魔를 항복 받고 정등정각正等正覺을 이루신 큰 힘이 된 것입니다. 후세의 사람들이 싯달다 태자의 출가를 일러 “위대한 포기抛棄”라고 찬탄하고 있습니다.
출가는 이와 같이 속세의 삶을 떠나 불도에 나아가는 첫 관문이므로, 오늘날 불가에서 출가는 세속의 범부들이 삼보에 귀의하여 승려가 입문으로 출가일을 승려의 날이라고도 합니다.
동남아시아의 불교국가인 태국에서는 실제로 20세 전후의 남자들이 1개월에서 1년에 걸쳐 일시적으로 출가하여 사찰에서 수행하는 생활을 하게 합니다. 한번쯤 출가하여 승려생활을 체험하는 일종의 성년의식으로 이를 매우 중요한 의식으로 여깁니다. 이들은 순수한 자발적 수행의식으로 부처님의 은덕에 보답하고, 돌아가신 부모나 가족의 구제를 기원하는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영원히 출가하지 않고 단기간 동안만 출가하므로 단기출가라고 부르는데, 근래 우리나라에서도 수행을 목적으로 사찰에 단기간 출가하는 단기출가 제도가 있어서 출가를 체험하게 하고 있습니다.
법화경 본문本門에서는 석가모니불이 구원실성 본불本佛이심이 밝혀진 바, 부처님은 영원한 과거에 성불하신 분이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날의 위대한 출가의 참된 의의가 감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원한 부처님이 법신法身이나 보신報身을 수적垂迹하여 역사적 불타佛陀인 응신應身으로 몸을 나투신 응화에 의依해서만 중생을 교화하실 수 있는 까닭이며, 영원한 본불本佛일지라도 출가하사 구도求道하신 일은 중생에 대한 자비의 실천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출세하신 석가모니부처님도 구원겁 전에 불도를 이루시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마야부인에 입태 하고 탄생하시어 출가하고 마침내 성불하여 부처님이 되었다. 우리 법화행자들은 싯달 태자의 출가에 대한 현명한 판단과 결연한 의지를 본받아 우리들의 신심을 가다듬어야 되겠습니다.
오는 2월 15일은 부처님께서 2561년 전에 열반涅槃(니르와나Nirvana)하신 열반절입니다. 역사적인 석가모니부처님은 세수 80세에 꾸시나가라의 사라쌍수에서 열반에 드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법화경에는 서품에서 일월등명불이 열반에 들고, 여래수량품에서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것은 불쌍한 중생들을 제도하기위해 방편으로 보이신 것이라고 합니다.
“이때 나와 여러 중승衆僧이 함께 영축산에 나와, 내가 중생에게 말하되, 항상 여기에 있어 멸하지 아니하건만 방편력을 쓰는 고로 멸滅과 불멸不滅이 있음을 나타내노라.”(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20)
시아급중승 구출영축산 아시어중생 상재차불멸 이방편력고 현유멸불멸
時我及衆僧 俱出靈鷲山 我時語衆生 常在此不滅 以方便力故 現有滅不滅
부처님께서는 무시무종無始無終 영원히 항상 이 사바세계에 머물러 계십니다. 그러한 부처님께서 왜 입멸入滅하시는 것일까요. 우리는 부처님께서 돌아가시는 것은 죽는다고 하지 않고 열반涅槃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열반과 범부凡夫의 죽음은 죽는[入滅]형상은 모두 같지만 그 내용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열반은 생사生死를 내 뜻대로 하는 것이요, 죽음은 생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는 생사를 여의고 자기 마음대로 생사를 맞이하는 것이요, 하나는 생사를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뜻에 따라 이 세상에 출생하시고 돌아가실 때에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스스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이 세상에 출생하는 것부터 자신의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전세에 지은 선업 악업의 분한分限에 의해서 출생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인간의 모습으로 출생하신 이상 삼계제법의 도리인 인연에 의한 무상법에 지배를 받습니다. 인연에 의해 나온 이상 인연에 의해 늙고 병들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일체 사물 또한 인연에 의해 만들어져서 인연에 의하여 변하여 소멸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본래 성불하여 생멸변화가 없지만 중생을 구하기 위해 출세하였기 때문에 방편으로 생멸을 보이신 것입니다. 방편으로 생멸을 보이신 이유에 대해서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습니다.
“만일 여래가 항상 있어 멸하지 않음을 보게 되면 곧 교만한 생각을 일으키어 싫어지며 게으름을 품어서 만나기 어려운 생각과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아니하리라.”(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10)
약견여래 상재불멸 변기교자 이회염태 불능생어난조지상공경지심
若見如來 常在不滅 便起憍恣 而懷厭怠 不能生於難遭之想恭敬之心
만약 부처님께서 항상 살아계셔서 가까이 모시고 끊임없이 교훈을 받고 있다면, 우리중생들은 으레 그러려니 하고 크게 어렵고 고맙게 생각지 않을 뿐 아니라, 교만하고 방자하고 게으른 마음이 생겨서 존경하는 마음마저 사라집니다. 그리고 부처님을 만나기가 얼마나 귀하고 어려운 일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 결과 생사해탈의 희유한 법문을 듣고서도 다음 기회로 미루고 부지런히 실행하지 않아서 마침내 악도에 떨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부처님께서 항상 이 세상에 계시는 고마운 일이 도리어 중생에게는 해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큰 놀라움을 주어 각성하도록 하고 나아가 부지런히 정진하게 하고자 멸하지 않건만 입멸에 드는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부처님이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중생들은 무상한 세상의 진리를 깨닫고, 어리석은 중생들이 뉘우치고 참회하며 부처님을 그리워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세속에서도 부모님이 계실 때에는 부모가 보살펴 주는 것에 예사로 여기고 말씀하신 일들에 대해서 소홀히 여기다가 뜻밖에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면 그제야 슬퍼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이런 중생들의 모습을 여래수량품에서는 독약을 먹고 본심을 잃은 아들들이 뜻밖에 먼 외국에 나가있는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서, 회심하게 됩니다.
“만약 아버지가 계시면 우리들을 사랑하고 불쌍히 생각하시어 능히 구해서 지켜주시련만 지금은 우리를 버리시고 먼 다른 나라에 가셔서 세상을 떠나셨도다.”(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16)
약부재자 자민아등 능견구호 금자사아 원상타국 자유고로 무부시호
若父在者 慈愍我等 能見救護 今者捨我 遠喪他國 自惟孤露 無復恃怙
라고 슬퍼하다가, 아들들은 마침내 본심을 되찾았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중생은 부처님의 입멸을 당하고서야 비로소 그 만나기 어려움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제야 부처님을 그리워하고 진리를 알고자하는 마음이 생겨서 비로소 선근을 닦게 됩니다. 그러므로 경에서는 “부처님은 본래 멸도 함이 없지만 중생을 위하여 방편으로 열반의 모습을 나타낸다”고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항상 이 사바세계에 계시지만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하여 입멸을 보여 주시는 것을 현멸現滅의 대자大慈라고 합니다. 중생들이 탐·친·치에 물들어 생사의 업을 만들어 육도에 윤회하며 고해에 빠져 있으므로, 중생들과 똑같이 생을 보이고 늙고 병들어 입멸에 이름으로써 중생들이 생·로·병·사의 과정에서 느끼고 경험하는 고통을 구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무량한 일대사一大事 부처님 자비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진정한 뜻은 끝내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영산법화사 사부대중 여러분!
다가오는 입춘절, 출가일, 열반일을 맞아, 일상에서는 성심으로 일하고 도량에서는 부지런히 정진하여 법화경의 진실한 뜻을 깨우쳐서 법화경의 무량공덕과 구원실성 석가모니불의 가피가 항상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유년丁酉年 닭의 해 입춘立春을 맞이합니다.
2017년 정유년이란 천간天干이 ‘정丁’이고, 지지地支가 ‘유酉’인 해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서 10간의 네 번째 정과 십이지의 10번째 유로부터 나온 것으로, 육십 간지의 34번째 해이기도 합니다. 전통의 음양오행설에서 병丙과 정丁은 붉은 색이고, 신申과 유酉가 빨간색을 의미하므로, 정유년은 빨간 닭의 해라고 합니다. 고대로부터 닭은 상서로운 가축으로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나 세상을 밝게 다스린다고 하여 혁거세赫居世라고 하였습니다. 옛날부터 닭이 울면서 하루가 열렸으므로 여명黎明을 뜻하고, 어둠을 의미하는 귀신이나 악령이 닭이 울면서 물러간다고 하여 축귀逐鬼의 상서로운 새로 통하였습니다. 또 닭은 문文, 무武, 용勇, 인仁, 신信의 다섯 가지 덕을 갖춘 동물로 입신출세와 부귀공명을 상징하기도 하였습니다. 닭의 볏은 관冠을 쓴 모습이고 볏은 벼슬과 발음이 비슷하여 관직을 가져다주는 동물로 여기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정유년의 뜻으로 올해는 정치적으로 밝은 정치, 경제적로 맑은 경제가 이루어져서 나라살림이 훨씬 좋아지는 희망찬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정유년 올해의 입춘은 2월 4일 입니다. 입춘은 1년 24절기 중에 첫 번째입니다. 소한·대한의 추운 겨울이 지나고 그동안 혹한 속에 있던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맞는 희망의 절기입니다. 입춘은 태양의 황경이 315도인 때로서 양력으로 2월 4일 무렵입니다. 농경사회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절기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왔습니다. 입춘에는 대문이나 기둥에 한해의 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글귀를 써서 붙이는 민속행사가 있습니다. 이것을 입춘첩立春帖이라 하며, 또는 입춘축立春祝이라고도 합니다. 궁중에서는 설날에 내전內殿 기둥과 난간에다 문신文臣들이 지은 연상시延祥詩 가운데 좋은 것을 뽑아 써 붙였는데 이를 춘첩자春帖子라 불렀습니다. 근래 절에서는 입춘불공을 드리며, 한 해 동안 가족들이 불보살님의 가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기를 기원하기도 한다.
입춘은 절기상 동지冬至를 정점으로 봄으로 가는 첫 문인 셈이다. 이후 우수雨水 경칩驚蟄 춘분春分으로 이어지는 봄의 기운은 청명淸明 곡우穀雨로 이어지면서 모든 사물이 왕성한 생장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입춘은 음력 2월이고 대개 음력 정월에 해당하여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때입니다. 우리 속담에 “입춘 추위는 꿔다해도 한다”고 하거나 “입춘에 장독깨진다”고 하듯이 꼭 매서운 추위가 한 두 차례씩 찾아오곤 합니다. 입춘의 민속으로는 양력 전날이 절분節分인데 이것은 철(시절時節, 계절季節)의 마지막이란 뜻입니다. 이날 밤을 ‘해넘이’라 부르고,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계절은 아직 겨울인지라, 마음으로는 봄이라지만 추위가 강하여 ‘입춘추위’라는 말이 있으나, 가시지 않은 찬 기운이 봄에 따사로움으로 변하기를 기대하는 심정에서 연유된 말이며 풍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입춘을 맞으면서 입춘축立春祝이 의미하는 좋은 일들이 가내家內에 가득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몇 가지를 제시합니다.
“입춘대길건양다경立春大吉建陽多慶”이란 글귀는 입춘을 맞아 크게 좋은 일이 있고, 새해가 시작함에 경사스런 일이 많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가장 많이 써서 붙이는 글귀입니다.
“입춘대길만사여의형통 立春大吉萬事如意亨通”이란 입춘에는 크게 좋은 일이 있고 모든 일이 뜻한 바 대로 잘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수여산부여해壽如山富如海”란 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유해지길 바란다는 뜻입니다.
“용수오복호축삼재龍受五福虎逐三災”란 용은 오복을 들여오고 호랑이는 재앙을 쫓아낸다는 뜻입니다.
또, 천하만민과 나라의 온 백성들이 편안하고 태평하기를 바라는 글귀로는,
“천하태평사방무일사天下泰平四方無一事”란 온 세상이 태평한 봄이요, 사방 어느 곳에도 탈이 없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국태민안가급인족國泰民安家給人足”이란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여 집집마다 풍족하고 사람마다 넉넉하다는 뜻입니다.
“우순풍조시화풍년雨順風調時和豊年”이란 절기가 순조로우니 화평하고 풍성한 세월이 되기 바란다는 뜻입니다.
또 부모님과 자손의 수명수복을 기원하는 글귀로는
“부모천년수 자손만세영父母千年壽子孫萬歲榮”이란 부모님은 오래 사시고, 자손은 길이 영화를 누리기 바란다는 뜻입니다.
“소지황금출개문만복래掃地黃金出開門萬福來”란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온갖 복이 들어오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정유년 입춘을 맞아 우리 영산 법화행자들도 매일매일 대길大吉하시고, 만사여의萬事如意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불교의 사대명절四大名節하면 부처님 탄신일(4월 8일), 출가일(2월 8일), 성도일(12월 8일), 열반일(2월 15일)을 들게 됩니다. 이중에서 불교가 탄생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 출가일과 영원한 적멸에 드시는 열반일이 2월에 들어 있습니다.
출가일이란 고대 인도의 카필라국에 왕자였던 고따마 싯다르타가 화려한 왕궁의 생활을 버리고 구도求道길에 나선 날입니다. 후일 가야성 보리수아래에서 성도成道하셔서 부처님이 되시고, 법륜法輪을 굴리셔서 일찍이 없었던 진리를 밝혀 불교가 성립된 것입니다. 부처님의 출가는 매우 숭고한 결단이었습니다. 고따마 싯다타는 왕위를 계승할 태자이셨고 그 총명한 자질로 인해 온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셨을 뿐 아니라, 후에는 야수다라라는 아름다운 부인과 사랑하는 아들 라후라가 있었으며, 궁중 생활은 화려하고 안락했습니다. 그러나 태자는 즐겁고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중아함경'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남이 늙고 병들어서 괴로움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도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다. 남이 죽는 것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나는 남이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을 보고 그것을 내일로 여겨 괴로워하고 싫어하며, 부끄러워하고 나의 젊음에 대한 교만, 건강에 대한 교만, 수명에 대한 교만을 버렸다.” 곧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괴로움에 대해 싯달다 태자는 스스로 눈을 뜨심으로 세속의 부귀영화富貴榮華는 물거품 같은 것임을 아셨으니, 출가의 선택은 참으로 현명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현명한 행동 그 이상의 것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더구나 태자의 신분으로서 왕궁의 생활을 포기하는 데에는 크나큰 결단이 따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두를 버리고 출가하셨던 그 용기는 곧바로 마魔를 항복 받고 정등정각正等正覺을 이루신 큰 힘이 된 것입니다. 후세의 사람들이 싯달다 태자의 출가를 일러 “위대한 포기抛棄”라고 찬탄하고 있습니다.
출가는 이와 같이 속세의 삶을 떠나 불도에 나아가는 첫 관문이므로, 오늘날 불가에서 출가는 세속의 범부들이 삼보에 귀의하여 승려가 입문으로 출가일을 승려의 날이라고도 합니다.
동남아시아의 불교국가인 태국에서는 실제로 20세 전후의 남자들이 1개월에서 1년에 걸쳐 일시적으로 출가하여 사찰에서 수행하는 생활을 하게 합니다. 한번쯤 출가하여 승려생활을 체험하는 일종의 성년의식으로 이를 매우 중요한 의식으로 여깁니다. 이들은 순수한 자발적 수행의식으로 부처님의 은덕에 보답하고, 돌아가신 부모나 가족의 구제를 기원하는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영원히 출가하지 않고 단기간 동안만 출가하므로 단기출가라고 부르는데, 근래 우리나라에서도 수행을 목적으로 사찰에 단기간 출가하는 단기출가 제도가 있어서 출가를 체험하게 하고 있습니다.
법화경 본문本門에서는 석가모니불이 구원실성 본불本佛이심이 밝혀진 바, 부처님은 영원한 과거에 성불하신 분이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날의 위대한 출가의 참된 의의가 감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원한 부처님이 법신法身이나 보신報身을 수적垂迹하여 역사적 불타佛陀인 응신應身으로 몸을 나투신 응화에 의依해서만 중생을 교화하실 수 있는 까닭이며, 영원한 본불本佛일지라도 출가하사 구도求道하신 일은 중생에 대한 자비의 실천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출세하신 석가모니부처님도 구원겁 전에 불도를 이루시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마야부인에 입태 하고 탄생하시어 출가하고 마침내 성불하여 부처님이 되었다. 우리 법화행자들은 싯달 태자의 출가에 대한 현명한 판단과 결연한 의지를 본받아 우리들의 신심을 가다듬어야 되겠습니다.
오는 2월 15일은 부처님께서 2561년 전에 열반涅槃(니르와나Nirvana)하신 열반절입니다. 역사적인 석가모니부처님은 세수 80세에 꾸시나가라의 사라쌍수에서 열반에 드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법화경에는 서품에서 일월등명불이 열반에 들고, 여래수량품에서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것은 불쌍한 중생들을 제도하기위해 방편으로 보이신 것이라고 합니다.
“이때 나와 여러 중승衆僧이 함께 영축산에 나와, 내가 중생에게 말하되, 항상 여기에 있어 멸하지 아니하건만 방편력을 쓰는 고로 멸滅과 불멸不滅이 있음을 나타내노라.”(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20)
시아급중승 구출영축산 아시어중생 상재차불멸 이방편력고 현유멸불멸
時我及衆僧 俱出靈鷲山 我時語衆生 常在此不滅 以方便力故 現有滅不滅
부처님께서는 무시무종無始無終 영원히 항상 이 사바세계에 머물러 계십니다. 그러한 부처님께서 왜 입멸入滅하시는 것일까요. 우리는 부처님께서 돌아가시는 것은 죽는다고 하지 않고 열반涅槃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열반과 범부凡夫의 죽음은 죽는[入滅]형상은 모두 같지만 그 내용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열반은 생사生死를 내 뜻대로 하는 것이요, 죽음은 생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는 생사를 여의고 자기 마음대로 생사를 맞이하는 것이요, 하나는 생사를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뜻에 따라 이 세상에 출생하시고 돌아가실 때에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스스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이 세상에 출생하는 것부터 자신의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전세에 지은 선업 악업의 분한分限에 의해서 출생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인간의 모습으로 출생하신 이상 삼계제법의 도리인 인연에 의한 무상법에 지배를 받습니다. 인연에 의해 나온 이상 인연에 의해 늙고 병들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일체 사물 또한 인연에 의해 만들어져서 인연에 의하여 변하여 소멸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본래 성불하여 생멸변화가 없지만 중생을 구하기 위해 출세하였기 때문에 방편으로 생멸을 보이신 것입니다. 방편으로 생멸을 보이신 이유에 대해서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습니다.
“만일 여래가 항상 있어 멸하지 않음을 보게 되면 곧 교만한 생각을 일으키어 싫어지며 게으름을 품어서 만나기 어려운 생각과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아니하리라.”(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10)
약견여래 상재불멸 변기교자 이회염태 불능생어난조지상공경지심
若見如來 常在不滅 便起憍恣 而懷厭怠 不能生於難遭之想恭敬之心
만약 부처님께서 항상 살아계셔서 가까이 모시고 끊임없이 교훈을 받고 있다면, 우리중생들은 으레 그러려니 하고 크게 어렵고 고맙게 생각지 않을 뿐 아니라, 교만하고 방자하고 게으른 마음이 생겨서 존경하는 마음마저 사라집니다. 그리고 부처님을 만나기가 얼마나 귀하고 어려운 일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 결과 생사해탈의 희유한 법문을 듣고서도 다음 기회로 미루고 부지런히 실행하지 않아서 마침내 악도에 떨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부처님께서 항상 이 세상에 계시는 고마운 일이 도리어 중생에게는 해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큰 놀라움을 주어 각성하도록 하고 나아가 부지런히 정진하게 하고자 멸하지 않건만 입멸에 드는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부처님이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중생들은 무상한 세상의 진리를 깨닫고, 어리석은 중생들이 뉘우치고 참회하며 부처님을 그리워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세속에서도 부모님이 계실 때에는 부모가 보살펴 주는 것에 예사로 여기고 말씀하신 일들에 대해서 소홀히 여기다가 뜻밖에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면 그제야 슬퍼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이런 중생들의 모습을 여래수량품에서는 독약을 먹고 본심을 잃은 아들들이 뜻밖에 먼 외국에 나가있는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서, 회심하게 됩니다.
“만약 아버지가 계시면 우리들을 사랑하고 불쌍히 생각하시어 능히 구해서 지켜주시련만 지금은 우리를 버리시고 먼 다른 나라에 가셔서 세상을 떠나셨도다.”(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16)
약부재자 자민아등 능견구호 금자사아 원상타국 자유고로 무부시호
若父在者 慈愍我等 能見救護 今者捨我 遠喪他國 自惟孤露 無復恃怙
라고 슬퍼하다가, 아들들은 마침내 본심을 되찾았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중생은 부처님의 입멸을 당하고서야 비로소 그 만나기 어려움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제야 부처님을 그리워하고 진리를 알고자하는 마음이 생겨서 비로소 선근을 닦게 됩니다. 그러므로 경에서는 “부처님은 본래 멸도 함이 없지만 중생을 위하여 방편으로 열반의 모습을 나타낸다”고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항상 이 사바세계에 계시지만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하여 입멸을 보여 주시는 것을 현멸現滅의 대자大慈라고 합니다. 중생들이 탐·친·치에 물들어 생사의 업을 만들어 육도에 윤회하며 고해에 빠져 있으므로, 중생들과 똑같이 생을 보이고 늙고 병들어 입멸에 이름으로써 중생들이 생·로·병·사의 과정에서 느끼고 경험하는 고통을 구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무량한 일대사一大事 부처님 자비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진정한 뜻은 끝내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영산법화사 사부대중 여러분!
다가오는 입춘절, 출가일, 열반일을 맞아, 일상에서는 성심으로 일하고 도량에서는 부지런히 정진하여 법화경의 진실한 뜻을 깨우쳐서 법화경의 무량공덕과 구원실성 석가모니불의 가피가 항상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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