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영산법화종 영산법화사

구원실성 석가세존의 불력 · 법력이 넘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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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스님
법화 조사스님은
본래 유교 집안에서 1912년 12월 27일 경기도 시흥에서 둘째 아드님으로 태어 나셔서 일찍 결혼하시어 범속의 가정 생활을 하시던 중 부처님의 대자비로 전생에 선연의 입산수도(入山修道) 작승(作僧)하셨던 숙세 인연의 공덕으로 1939년 27세 되시 던 해에 법화경에 귀의하셨다.

개운사의 박한영 노사, 안진호 법사, 퇴정 권상노 박사등에게서 법화경의 경의를 들으셨으 나 나신난해의 법경을 깊은 뜻을 쉽사리 이해할 수가 없어 태백산에서 홀로 한겨울을 나신 후 일본국 일본산 묘법사 개창 조사이신 등정 일달 큰스님 문하에 입문 출가 들고 하셨고 법화경만이 전인류를 구원할 수 있음을 크게 깨달으신 바 있어 법화경을 적극적으로 널리 홍포하시고자 격고 차제 다시 스승을 찾아 행각을 계속하셨고 당시의 수도 생활이 법화 조사님의 신앙생활의 일생이 결정되었다.

화엄경의 "초발심시(初發心時) 편성정각(便成正覺)" 이라 하신 말씀이 항상 뇌리에서 떠나지 않으신 법화 조사님 께서는 32세 되던 해 8월 6일 크게 깨달으신 바 있어 속연을 떠날 생각을 하시고 홀로 환희신약(歡喜信藥) 하셨다. 8.15 해방후 윤고암 노스님을 계사(戒師)로 모시고, 경남 성주사에서 수계하셨는데, 많은 배척과 어려움을 당하셨음에도 법화경 지품이 무량공덕을 스스로 감수하셨다. 천태, 묘락 양대사를 비롯하여 신라의 현광 법사 고려의 제관법사, 대각국사 등의 고덕(高德)을 흠모하여 부자석신명(不自惜身名)의 신행과 광선홍교(廣宣弘敎)의 감명(感銘)을 얻으셨다. 법화조사님께서는 세존 출세의 본회가 곧 묘법연화경이요, 세존 출세의 일대사 인연이 또한 묘법연화경이며, 일체중생(一切衆生) 실유불성(悉有佛聖)이 묘법연화경이요,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전미개오(轉迷開悟) 즉신성불(卽身成佛)의 경이 묘법연화경이라는 것을 활연히 깨달으시어 이것이 말법악세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확신, 지용의 안립행 보살님의 사명을 이어받았음을 자각하시고 마침내 오탁악세를 구원하시리라 하는 서원을 일으키시어 1955년 9월 1일 경남 진해의 묘법사에서 영산법화사를 개창(開創)하셨다.

조사님은 1960년 진해시에 여좌도량을 건립하셨고 1961년 9월 서울 우이동에 삼각산 도량을 1963년 9월에는 서울 명륜동에 포교당을 개설하셨는데 법화사상을 더 널리 더욱 깊이 적극적으로 펴기 위하여 1964년 3월 5일 출판부를 양설하시고 법화경 관계 서적을 간행 분포(分布)하기 시작하셨으며, 1964년 3월에 진해 천자봉 도량을 개설하셨다. 1966년 10월 13일 조사님께서는 일본 동경의 일본산 묘법사에 가셔서 등정일달 노스님으로부터 세계평화불사리탑 건립을 위한 불사리 1과를 전수받으셨고, 그 후 연세대학교 의과 대학에 근무하시던 태국의 센스리 와타나 의사 내외분이 법화스님의 세계평화 불사리탑 건립 서원을 듣고 폰 셍니껀 스님께 말씀드려 1970년 10월 13일 별지 서신과 함께 석가세존의 진신사리 10과를 증정받으시자 불사리탑 건립지를 물색 마침내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성불산에 흡호(恰好)한 자리를 발견하여 이 지역에 성역을 조성하기로 결정하시고 곧 원당(願堂 :소원을 비는집, 현재 장흥 도량을 말함)을 개설하여 부지구입에 착수하셨다. 그러는 동안에 교세 확장에 더욱 힘쓰시어 1967년 9월에 서울 종암동 도량이 건립되고 1968년 3월 의정부도량이 건립되었으며 1969년 제주 서귀포 도량, 1970년 4월 동두천 도량, 1975년 2월 부산 동래의 부산도량과 서울 면목동 도량이 개설되어 교세가 날로 융성해 갔다. 그러다가 1977년 7월 6일 조사님께서는 다른 세계에서 불사를 하시려함인지 홀연 열반에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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