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영산법화종 영산법화사

구원실성 석가세존의 불력 · 법력이 넘치는 곳

종무소 전화번호 : 02-743-3011
연혁
법화조사(法華祖師)큰스님께서는 본래(本來) 유가(儒家)의 집안에 태어나시어,
20세세도 채 안된 소년으로 결혼(結婚)하신 후 범속이하(凡俗以下)의 가정생활(家庭生活)이 계속되던 중 부처님의 대자비(大慈悲)로 전생선연(前生善緣)의 입산수도(入山修道) 작승(作僧)하셨던 숙세인연(宿世因緣)의 공덕(功德)으로 차생(此生)에서 법화경(法華經)에 귀의(歸依)하신 것은 27세 되던 해 가을이었다. 그리고 40여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조사(祖師)큰스님께서는 법화경(法華經)을 손에 드실 적마다 환희(歡喜)하시고 맹목적(盲目的)으로 읽고 맹목적(盲目的)으로 기뻐하셨다.

그러던 중 개운사(開運寺)의 박한영노사(朴漢永老師)에게 법화경(法華經)의 대의(大意)를 들었고, 또 다시 안진호법사(安震湖法師)와 퇴경 권상노박사(退耕權相老博士)를 뵙고 경의(經意)를 들으셨다. 그러나 난신난해(難信難解)의 법화경(法華經)의 심의(深意)를 쉽사리 이해(理解)할 수 없으므로 태백산(太白山)에 들어가시어 외딴 움막에서 홀로 한겨울을 지내신 후 다시 스승을 찾아 산(山)에서 산(山)으로 부락(部落)에서 부락(部落)으로 행각(行脚)을 계속하셨다. 이 태백산(太白山)의 수도생활(修道生活)에서 조사(祖師)큰스님의 신앙생활(信仰生活)의 일생(一生)이 결정(決定)된 것이다.

화엄경(華嚴經)에서 「초발심시(初發心時) 편성정각(編成正覺)」이라 하신 말씀이 항상 뇌리(腦裡)에서 떠나지 않으신 조사(祖師)큰스님께서는 34세 되던 해 8월6일 크게 깨달으신 바 있어, 속연(俗緣)을 떠날 결심(結審)을 하시고 홀로 환희신락(歡喜信樂)하셨다,

8 -15해방(解放)후에 조사(祖師) 큰스님은 윤고암(尹古庵)큰스님을 계사(戒師)로 모시고 경남(慶南) 창원군(昌原郡) 성주사(聖主寺)에서 수계(授戒)하셨는데, 악구매리(惡口罵?) 삭삭견빈출(數數見頻出) 혹은 폭행(暴行) 등의 끊임없는 비난공격(非難攻擊)을 받으실 때마다 법화경(法華經) 지품(持品)의 무량공덕(無量功德)을 스스로 감수(感受)하셨다. 천태묘락양대사(天台妙樂兩大師)를 비롯하여 백제(百濟)의 현광법사(玄光法師), 고려(高麗)의 제관법사(諦觀法師), 대각국사(大覺國師)등의 고덕(高德)을 흠모(欽慕)하여 부자석신명(不自惜身命)의 신행(信行)과 광선홍교(廣宣弘敎)에 감명(感銘)을 얻으셨다.

법화조사(法華祖師) 큰스님께서는 세존출세(世尊出世)의 본회(本懷)가 곧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요, 세존출세(世尊出世)의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이 또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며, 일체중생(一切衆生) 실유불성(悉有佛性)이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요,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전미개오(轉迷開悟) 즉신성불(卽身成佛)의 경(經)이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라는 것을 활연(豁然)히 대오(大悟)하시어 이것이 말법악세(末法惡世)를 구원(救援)할 수 있는 유일(唯一)한 길임을 확신(確信), 지용(地涌)의 안립행보살(安立行菩薩)의 사명(使命)을 이어받았음을 자각(自覺)하시고 마침내 오탁악세(五濁惡世)를 구원(救援)하시리라 하는 큰 서원(誓願)을 일으키시어 1957년 3월 3일 경남(慶南) 진해시(鎭海市)에 있는 도불산(道佛山) 묘법사(妙法寺)에서 말법 만년 미증유 색심불이 만다라 본존(末法 萬年 未曾有 色心不二 曼陀羅)을 초(抄)하셨다.

조사(祖師)큰스님은 1961년 진해시(鎭海市)에 현동도량을 개설(開設)하셨고, 4 ? 19의 어려운 때 우리들의 희망인 반야심경경의(般若心經敬意)를 쓰시고 홍묘법장저 반야심경(般若心經) 강의(講義)를 이 세상 처음 양장(洋裝) 한글본을 간행(刊行)(1.30)하셨으며, 1960년 9월에 서울 우이동(牛耳洞)에 삼각산도량(三角山道場)을 개설(開設)하셨으며 난해(難解)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한글번역 법화경(法華經) 행자(行者)의 근본(根本)의 지침서(指針書)가 되는 교과서(敎科書)를 발행(發行)하셨다.(10.1 이법화 역(譯))

1962년 9월에는 서울 명륜동에 포교당(布敎堂)을 개설(開設) 1963.12.23. 일련대사유문선집(日蓮大師遺文選集)을 이법화(李法華) 번역(飜譯)으로 발행(發行), 법화사상(法華思想)을 더욱 널리 더욱 깊이 더욱 적극적(積極的)으로 펴기 위하여 1964년 2월 5일 출판부(出版部)를 병설(竝設)하여 법화경(法華經)관계 서적(書籍)을 간행반포(刊行頒布)하기 시작하셨으며 1964년 3월에 경남(慶南) 진해시(鎭海市) 장천동(將川洞)에 천자봉도량(天子峰道場)을 개설(開設)하셨다. 그리고 법화경(法華經) 조석독송요품(병풍식)(1964.9.5 영산법화사(靈山法華寺) 출판부(出版部))을 발행(發行)하셨다. 1965.10.27. 2세 교육(敎育)을 위해 불교동화(佛敎童話) 1,2,3권을 영산법화사(靈山法華寺) 출판부(出版部)에서 발행(發行)하셨다. 1966년 10월 13일 조사(祖師) 큰스님께서는 일본국(日本國) 동경(東京)의 일본산(日本山) 묘법사(妙法寺)에 가셔서 승정일달(僧井日達) 노(老)큰스님으로부터 세계평화불사리탑(世界平和佛舍利塔) 건립(建立)을 위한 불사리(佛舍利) 1과(果)를 전수(傳受) 받으셨고, 시행착오(試行錯誤)를 겪으면서 불기(佛紀) 2512년 태세(態勢) 무신(戊申) 4월 12일 말법만년증유색심불이관심(末法萬年未曾有色心不二觀心)만다라본존(曼陀羅本尊)을 완성 우이동(牛耳洞) 삼각산도량(三角山道場) 우물위 암벽(岩壁)에 쓰시고 각자(刻字)해 놓으셨다. 이 만다라본존(曼陀羅本尊)이 완성(完成)된 것이 영산법화종(靈山法華宗) 영산법화사(靈山法華寺) 개창(開創)의 종지(終止)를 완성(完成)하신 것이다. 1968. 10. 27 법화경신앙(法華經信仰)의 지침서(指針書)인 법화경(法華經)의 신앙(信仰)을 중천일사 저(中川日史 著) 이법화(李法華) 역(譯)으로 발행(發行)하셨으며, 그 후 연세대학교(延世大學校) 의과대학(醫科大學)에서 박사학위연구과정(博士學位硏究課程)에 있던 태국(泰國)의 「센스리 와타나」의사(醫師) 내외분(內外分)이 법화조사(法華祖師) 큰스님의 세계평화불사리탑건립서원(世界平和佛舍利塔建立誓願)을 듣고 「폰?셍니껀」큰스님께 말씀드려 1970년 10월 13일 별지(別紙) 서신(書信)과 함께 석가세존(釋迦世尊)의 진신사리(眞身舍利) 10과(果)를 증정(贈呈)받으시자, 불사리탑건립부지(佛舍利塔建立敷地)를 물색, 양주시(楊洲市) 장흥면(長興面) 성불산(聖佛山)에 흡호(恰好)한 자리를 발견(發見)하여 이 지역(地域)에 성역(聖域)을 조성(造成)하기로 결정(決定)하고 곧 원당(願堂)을 (1972.10.2 ~ 2003.10.31 소실(燒失))개설(開設)하여 부지(敷地) 구입(求入)에 착수(着手)하셨다.

그러는 동안에도 교세확장(敎勢擴張)에 더욱 힘쓰시어 1969년 9월(74년 큰법당(法堂) 완성(完成))에 서울 종암동(種巖洞)에 종암동도량(種巖洞道場)이 개설(開設)되고, 이듬해 3월에 의정부도량(議政府道場)이 개설(開設)되었으며, 다시 그 이듬해에는 제주도(濟州道) 서귀포시(西歸浦市)에 서귀포도량(西歸浦道場)이 개설(開設)되었다. 인도(印度), 네팔, 태국(태국) 등의 성적(聖蹟)을 순례(巡禮)하시어 석가모니 부처님의 음성(音聲)을 들으시고 어루만지심을 받아 심오(深奧)한 보리지(菩提地)에 이르시고 그 기행문(紀行文) 부처님 자취를 찾아(73.10.27 이법화(李法華) 저(著))를 간행(刊行)하여 사중(四衆)으로 하여금 불퇴전의 신심(信心)을 성취(成就)하게 하셨으며 그 이듬해 74년 4월에 사당동도량(舍堂洞道場)이 또 동두천도량(東豆川道場)이, 같은 해 5월에 보은도량(報恩道場)이 개설(開設)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27일 한국(韓國) 정신(情神)을 바로 찾기 위하여 「창가학회(創價學會)를 절복(折伏)한다」를 이법화(李法華) 저(著)로 간행(刊行)하셨다. 그 이듬해인 1975년 2월에는 부산시(釜山市) 동래구(東來區)에 부산도량(釜山道場)이, 4월에는 면목동(面牧洞)에 면목동도량(面牧洞道場)이 개설(開設)되어 교세(敎勢)가 날로 융성(隆盛)해 갔다.

법화경강의(法華經講義) 서문(序文)에 법화경(法華經) 법문(法門)을 묻는 사람을 자주 대하게 되니 어찌하랴... 나와 함께 불연(佛緣)과 법화경(法華經)의 법연(法緣)이 널리 보문(普聞)되기를 기원(祈願)하면서 정미년(丁未年) 봄 삼각산도량(三角山道場)에서 번역(飜譯)을 시작하셨다는 말씀이 계시니 법화경(法華經)이 이 세상에 널리 퍼지기를 기원(祈願)하면서 1976.10.27. 법화경강의(法華經講義) 발행(發行)하셨다.(소림일랑(小林一郞) 저(著) 이법화(李法華) 역(譯))

이제까지 불교(佛敎)의 각종(宗) 각파(派)에서 아무런 근거(根據)도 없고 체계(體系)도 없이 각양각색(各樣各色)으로 시행(試行)한 불교의식(佛敎儀式)의 통일(統一)을 위해 우리나라 현실(現實)에 맞게 정리 체계화(體系化)한 법화경(法華經) 요문(要門)과 예규(禮規)를 이법화(李法華) 저(著)로 76년 12월 8일 발행(發行), 그러시다가 1977년 7월 6일 조사(祖師)큰스님께서는 홀연 원적(遠寂)에 드셨다. 이에 조사(祖師)큰스님의 유칙(遺勅)에 따라 상좌(上座)김행산(金行山)스님이 제2대 법주(法主)로 조사(祖師)큰스님의 뜻을 이어받아서 문중(門中) 여러 스님과 신도(信徒)님들이 화합(和合)하여 포교(布敎)와 서적출판(書籍出版)에 전력(全力)을 하면서 세계평화불사리탑(世界平和佛舍利塔) 건립부지(建立敷地) 조성(造成)을 통해 성역확장(聖域擴張)에 힘쓰고 있다.

법화조사(法華祖師)큰스님 유고(遺稿)를 정리하여 1979년 1월 1일 불교(佛敎) 홍통사(弘通史)(이법화(李法華) 역(譯))를 발행(發行), 그해 12월 20일 유마경강의(維摩經講義) 상(上), 하(下) 2권(券)(소림일랑(小林一郞) 저(著), 이법화 (李法華) 역(譯))을 발행(發行)했다. 1980년 4월 27일 법화삼부경(法華三部經) 확대판(擴大版)(이법화(李法華) 역(譯))이 발행(發行), 그 해 9월에는 부처님말씀 전(全)5권(券)(윤재영 역(譯), 영산법화사(靈山法華寺) 출판부(出版部) 발행(發行)), 1980년 10월 1일 미국 L.A도량(道場) 개설(開設) 81년 2월 12일 승만경(勝?經) 강의(講義)(소림일랑(小林一郞) 저(著) 이법화(李法華) 역(譯)), 1982년 4월 23일 법화영험전(法華靈驗展)(김행산(金行山) 역(譯))발행(發行), 같은 해 7월 신림동도량(新林洞道場) 개설(開設), 1983년 9월 27일 관보현보살행법경(觀普賢菩薩行法經)(소림일랑(小林一郞) 저(著), 이법화(李法華) 역(譯))발행(發行), 1983년 10월 3일 본사(本寺) 큰법당(法堂)을 준공(竣工)하였다.

1986년 12월 22일 십불이문지요초(十不二門指要?)(이법화(李法華) 역(譯))발행(發行), 1986년 05월 27일 장흥근본도량(長興根本道場) 원당(願堂)을 준공(竣工), 1988년 05월 15일 석존성탄(釋尊聖誕) 법요식(法要式)(영산법화사(靈山法華寺) 출판부(出版部) 발행(發行))을, 또 그해 8월 1일 월간(月刊) 법화(法華) 40호(號) 발행(發行) ~ (2008년 06월)278회까지 발행(發行), 8월 20일 우란분법요식(영산법화사(靈山法華寺) 출판부(出版部) 발행(發行))을, 또 9월 30일 천도법요식(영산법화사(靈山法華寺) 출판부(出版部) 발행(발행)), 1989년 3월 25일 법화경(法華經) 조석독송요품(영산법화사(靈山法華寺) 출판부(出版部) 발행(發行)), 1990년 3월 27일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국역확대판(國譯廓大版)(이법화(李法華) 역(譯))발행(發行), 1993년 9월 1일 법화경(法華經) 30일 공부(김행산(金行山) 감수(監修), 반영규 저(著), 영산법화사(靈山法華寺) 출판부(出版部) 발행(發行)), 1996년 7월 27일 법화삼부경 금장본(法華三部經金裝本)(영산법화사(靈山法華寺) 출판부(出版部) 발행(發行)), 1997년 3월 27일 법화문구(法華文句) 4×6배판 2,198쪽 상(上), 하(下) 2권(券)(천태지자 술(述) 이원섭 역(譯))을 발행(發行)했다.

법화문구(法華文句)는 한국불교(韓國佛敎) 1650년 역사(歷史)상 최초 완역판(完譯版)으로 부처님이 되는 오직 하나의 가르침을 뜻하는 법화경(法華經)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의 마무리로 불경(佛經) 중 가장 중요한 경전(經典)인데 이 경(經)의 진상(眞想)을 최초로 밝힌 스님은 천태종(天台宗)을 창종(瘡腫)한 중국(中國)의 천태지자 큰스님으로서 이 지의 큰스님깨서 중국(中國) 수(水)나라 AD.587년 금릉 광택사에서 법화경(法華經)을 강의(講義)하셨고 이것을 그의 제자(弟子) 장안 관정이 필기(筆記)한 것이다. 한문본(漢文本) 10권(券)의 법화문구(法華文句)를 불교학(佛敎學)을 전공(專攻)한 한학자(漢學者)이신 이원섭선생께서 5년간에 걸쳐 200자 원고지(原稿紙) 16,000장의 분량(分量)으로 영산법화사(靈山法華寺) 출판부(出判部)에서 출판(出版)하였다. 그해 10월 20일 천태대사(일촌방랑(日村芳郞), 신전유장(新田維章) 저(著) 영산법화사(靈山法華寺) 출판부(出版部))를 발행(發行)하였다.

1997년 12월 31일 재단법인(財團法人) 대한불교(大韓佛敎) 영산법화회(靈山法華會), 법인설립(法人設立) 허가(許可)

1998년 8월 게릴라성 폭우(暴雨)로 개울사태 산사태(山沙汰)가 나서 4년여를 4개의 다리를 놓고 도로공사(道路工事)를 추진(趨進) 심혈(深穴)을 기울여 복구(復仇), 2001년 12월 군사보호구역(軍士保護區易)이 풀리고 2002년 봄 사찰부지(寺刹敷地) 조성허가(造成許可)가 나서 15t트럭 300여 차의 큰 돌을 쌓아 조경(造景)하여 꾸미고 세계평화불사리탑(世界平和佛舍利塔) 건립부지(建立敷地)를 만들어 2004년 4월 11일 세계평화불사리탑(世界平和佛舍利塔) 건립착공(建立着工)을 하게 되었다.

그 외에 천태사교의 집주가 200자 원고지(原稿紙) 15,000장을 완성(完成)하여 컴퓨터에 입력(入力)이 되고 가까운 시일(時日) 내에 출간(出刊)될 예정(豫定)이며 법화현의(法華玄義) 석첨 번역(飜譯)도 22,000여장의 원고지(原稿紙)가 마무리 되어 컴퓨터에 입력(入力)되고 있으니 가까운 시일(時日)안에 곧 출판(出判)이 될 것이다. 행학(行學)이 일여(一如)라고 하는 학(學)과 행(行)이 같이 간다는 것은 어려운 것으로 큰스님 재세시부터 그 뜻을 받어 이어 오고 있다.

TOP
종무소 전화번호 : 02) 743-3011   출판부 전화번호 : 02) 762-4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