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56년 02월 - 입춘 출가 열반 - 행산 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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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산법화사 댓글 0건 조회 6,550회 작성일 19-08-23 16:13본문
나무묘법연화경
임진년壬辰年, 용龍의 해를 맞이합니다. 용은 우리나라 민속에서는 예로부터 신령스런 동물로 봉황 기린 거북과 함께 4영靈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또한 용은 비를 가져오는 신묘함을 갖추고 있어서 풍요와 상서로움을 상징하고, 용안 용상 곤룡포로 불리듯 왕을 지칭하여 권위 희망을 뜻하기도 합니다. 불교에서도 용은 천용팔부天龍八部에 속하여 불법을 옹호하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고 있고, 용궁은 불경을 가져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묘법연화경'에서는 서품에서 잡중으로 등장하고 제바달다품에서는 사가라용왕의 8세 딸이 성불하는 모습으로 나오듯이 그 역할과 의미하는 바가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임진년이란 육십갑자에서 유래한 해의 구분으로 음력으로는 1월 1일(양력으로는 1월 23일)부터 시작합니다. 임壬은 주역 오행 10간刊 중에 수水에 해당하고 색으로는 검은색을 뜻하며, 용은 12간지중에는 다섯 번째 동물이며 동남향을 뜻한다고 합니다. 특히 올해를 흑룡이라 하는 것은 용을 뜻하는 진辰이 들어간 다섯 해, 곧 갑진甲辰 병진丙辰 무진戊辰 경진庚辰 임진壬辰이 있는데 오행으로 보면 각각 청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을 가리키고 있어서 임진년을 흑룡의 해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용의 해를 맞아 우리 법화행자들은 용의 장점을 취하여 항상 희망을 가지고 부지런히 일하고 수행하여 신묘한 용의 위의와 풍요를 가져오는 용의 위신력을 닮도록 열심히 노력하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소한 대한이 지나고 입춘은 24절기 가운데 첫 번째 절기입니다. 태양의 황경이 315도인 때로서 양력으로 2월 4일 무렵입니다. 음력으로는 정월에 들기도 하고 섣달에 들기도 합니다. 입춘은 새해를 맞이하는 절기로 봄이 시작되는 때입니다. 여러 가지 민속행사 중 대표적인 것은 좋은 뜻의 글귀를 써서 대문이나 기둥 또는 들보 등에 붙이는 일입니다.
이것을 입춘첩立春帖이라 하며, 또는 입춘축立春祝이라고도 합니다. 궁중에서는 설날에 내전內殿 기둥과 난간에다 문신文臣들이 지은 연상시延祥詩 가운데 좋은 것을 뽑아 써 붙였는데 이를 춘첩자春帖子라 불렀습니다.
절기상으로 입춘은 동지冬至 이후 음陰의 기운을 지니던 대지가 양陽의 기운을 갖기 시작하며 모든 사물이 왕성히 생동하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입춘 전날이 절분節分인데 이것은 철(시절時節, 계절季節)의 마지막이란 뜻입니다. 이날 밤을 ‘해넘이’라 부르고,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계절은 아직 겨울인지라, 마음으로는 봄이라지만 추위가 강하여 ‘입춘추위’라는 말이 있으나, 가시지 않은 찬 기운이 봄에 따사로움으로 변하기를 기대하는 심정에서 연유된 말이며 풍습들입니다.
입춘을 맞으면서 입춘축立春祝이 의미하는 좋은 일들이 가내家內에 만당滿堂하기를 기원祈願하는 뜻에서 몇 가지 예를 소개합니다.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 입춘에는 크게 좋은 일이 있고, 새해가 시작함에 경사스런 일이 많기를 바랍니다.
*수여산壽如山 부여해富如海 : 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유해지길 바랍니다.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 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 :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온갖 복이 들어오기를 바랍니다.
*부모천년수父母千年壽 자손만세영子孫萬歲榮 : 부모님은 오래 사시고, 자손은 길이 영화를 누리리라.
*용수오복龍受五福 호축삼재虎逐三災 : 용은 오복을 들여오고 호랑이는 재앙을 쫓아낸다.
*국태민안國泰民安 가급인족家給人足 :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여 집집마다 풍족하고 사람마다 넉넉하다.
*우순풍조雨順風調 시화풍년時和豊年 : 절기가 순조로우니 화평하고 풍성한 세월이 되겠네.
*천하태평天下泰平 사방무일사四方無一事 : 온 세상 태평한 봄이요, 사방 어느 곳에도 탈이 없기를 바랍니다.
음력 2월 8일은 부처님께서 출가出家하신 날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원래 인도 정반왕의 태자로 왕궁에서 나와 구도求道길에 들어가신 날이 바로 이날입니다. 후일 성도成道하셔서 부처님이 되시고, 법륜法輪을 굴리셔서 일찍이 없었던 진리를 밝혀 불교가 있게 하셨지만 만약 출가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었겠습니까. 불문佛門에 사대명절四大名節 출가절出家節이 있게 된 동기動機입니다. 왕위를 계승할 태자이셨고 그 총명한 자질로 인해 온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셨을 뿐 아니라, 야수다라라는 아름다운 부인과 사랑하는 아들 라후라가 있었으며, 궁중 생활은 즐겁고 유복有福하여 복이라는 복은 모두 갖추고 계셨지만 싣달다悉達多 태자는 괴로워 하셨습니다. 중아함경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남이 늙고 병들어서 괴로움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도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다. 남이 죽는 것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나는 남이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을 보고 그것을 내일로 여겨 괴로워하고 싫어하며, 부끄러워하고 나의 젊음에 대한 교만, 건강에 대한 교만, 수명에 대한 교만을 버렸다." 곧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괴로움에 대해 싣달다 태자는 스스로 눈을 뜨심으로 세속의 부귀영화富貴榮華는 물거품 같은 것임을 아셨으니, 출가의 선택은 참으로 현명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현명한 행동 그 이상의 것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더구나 태자의 신분으로서 왕궁의 생활을 포기하는 데에는 크나큰 결단이 따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두를 버리고 출가하셨던 그 용기는 곧바로 마魔를 항복 받고 정등정각正等正覺을 이루신 큰 힘이 된 것입니다. 후세의 사람들이 싣달다 태자의 출가를 일러 위대한 포기抛棄라고 찬탄하고 있습니다. 물론 법화경 본문本門에서는 석가모니불이 구원실성 본불本佛이심이 밝혀진 바, 부처님은 영원한 과거에 성불하신 분이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날의 위대한 출가의 참된 의의가 감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원한 부처님이 법신法身이나 보신報身을 수적垂迹하여 역사적 불타佛陀인 응신應身으로 몸을 나투신 응화에 의依해서만 중생을 교화하실 수 있는 까닭이며, 영원한 본불本佛일지라도 출가하사 구도求道하신 일은 중생에 대한 자비의 실천을 보이신 것입니다. 싣달다 태자의 현명한 판단과 결연한 의지를 본받아 흐트러지기 쉬운 우리들의 신심을 가다듬어야 되겠습니다.
2월 15일은 부처님께서 2556년 전에 열반涅槃(니르바나Nirvana:멸滅, 적멸寂滅, 무위無爲, 공적空寂하여 안온하므로 적寂 생사고해를 멸하므로 멸滅, 멸도, 생사의 인과를 멸하고 생사의 고해를 건너는 것. 일체의 번뇌와 고통을 영원히 끊어 버린 경지. 원적圓寂, 무위, 무작, 무생, 해탈이라 번역)하신 열반절입니다. 물론 불문佛門의 사대명절의 하나로 부처님께서 몸소 적멸(죽음)에 대해 모범을 보이신 날입니다.
“이때 나와 여러 중승衆僧이 함께 영축산에 나와, 내가 중생에게 말하되, 항상 여기에 있어 멸하지 아니하건만 방편력을 쓰는 고로 멸滅과 불멸不滅이 있음을 나타내노라.” (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20)
시아급중승 구출영축산 아시어중생 상재차불멸 이방편력고 현유멸불멸
時我及衆僧 俱出靈鷲山 我時語衆生 常在此不滅 以方便力故 現有滅不滅
부처님께서는 무시무종無始無終 영원히 항상 이 사바세계에 머물러 계십니다. 그러한 부처님께서 왜 입멸入滅 돌아가시는 것일까. 이것이 커다란 의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시는 것은 죽는다고 하지 않고 열반涅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부처님의 열반과 범부凡夫의 죽음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죽는[入滅]형상은 모두 같지만 그 내용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간략히 말하면 열반은 생사生死를 내 뜻대로 자유롭게 하는 것이요, 죽음은 그 반대로 생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는 생사를 여의고 자기 마음대로 생사를 맞이하는 것이요, 하나는 생사를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뜻에 따라 이 세상에 출생하시고 돌아가실 때에는 당신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돌아가시는 것이니 이것이 곧 열반인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우리 중생들은 이 세상에 출생한 것은 출생하고 싶어서 출생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전세에 지은 업의 분한分限에 의해서 출생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인간의 모습으로 출생하신 이상 무상한 현상의 육신은 인연에 의해서 변하여 멸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현상은 역사적으로 생물학적으로 보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종교적으로 신앙적으로 볼 때 이런 일반적인 설명만으로는 흡족 할 수가 없으니, 진실로 부처님의 열반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방법의 힘을 쓰기 때문)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왜 이러한 방편을 왜 쓰셨을까. 그것은 어리석은 중생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만일 여래가 항상 있어 멸하지 않음을 보게 되면 곧 교만한 생각을 일으키어 싫어지며 게으름을 품어서 만나기 어려운 생각과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아니하리라.”(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10)
약견여래 상재불멸 변기교자 이회염태 불능생어난조지상공경지심
若見如來 常在不滅 便起憍恣 而懷厭怠 不能生於難遭之想恭敬之心
“항상 나를 보는 까닭으로 교만하고 방자한 마음을 내며 방일하고 오욕에 착해서 악도 중에 떨어지기 때문이니라.” (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24)
이상견아고 이생교자심 방일착오욕 타어악도중
以常見我故 而生憍恣心 放逸著五欲 墮於惡道中
우리들은 만약 부처님께서 항상 살아계셔서 가까이 모시고 끊임없이 교훈을 받고 있다면, 으레 그러려니 하고 크게 어렵고 고맙게 생각지 않을 뿐 아니라, 교만한 마음 방자한 마음 게으른 마음이 생겨서 존경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만나기 어려운 일을 만났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 결과 생사해탈의 훌륭한 법문을 듣고도 실행에 옮기지 않아서 마침내 악도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부처님께서 항상 이 세상에 계시는 고마운 일이 중생에게는 도리어 해가 될 것이므로, 그들에게 큰 놀라움을 주시어 각성케 하여 부지런히 정진하게 하시고자 입멸에 드는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중생들은 몹시 놀라고 평소에 그러려니 하던 어리석은 생각을 뉘우치고 참회하고 반성하여 그리워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세속에서는 부모가 계실 때에는 부모가 보살펴 주심에 소홀히 예사로 생각하고 허물없이 되어서 이르는 말도 잘 듣지 않던 자식들이 뜻밖에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면 그제야 슬퍼하고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래수량품에는 독약을 먹고 본심을 잃은 아들들이 뜻밖에 먼 외국에 나가있는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서,
“만약 아버지가 계시면 우리들을 사랑하고 불쌍히 생각하시어 능히 구해서 지켜주시련만 지금은 우리를 버리시고 먼 다른 나라에 가셔서 세상을 떠나셨도다.”(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16)
약부재자 자민아등 능견구호 금자사아 원상타국 자유고로 무부시호
若父在者 慈愍我等 能見救護 今者捨我 遠喪他國 自惟孤露 無復恃怙
하고 슬퍼하여 마침내 본심을 되찾았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중생은 부처님의 입멸을 당하고서야 비로소 그 만나기 어려움을 알고 부처님을 그리워하고 진리를 알고자하는 마음이 생겨서 비로소 선근을 닦게 되는 것이므로, 부처님은 불멸이시지마는 방편으로 열반의 상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항상 이 사바세계에 계시지마는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하여 입멸을 보여 주시는 것을 현멸現滅의 대자大慈라고 합니다. 중생을 위해서 나타나시고 사라지시고 하는 큰 자비야말로 부처님의 무한한 자비입니다. 이러한 대사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진정한 뜻은 끝내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영산법화사 사부대중 여러분!
입춘절과 출가일 열반일이 들어있는 2월을 맞아, 일터에서는 부지런히 일하고 도량에서는 열심히 정진하여 법화경의 진실한 뜻을 깨우쳐서 무량공덕과 구원실성 석가모니불의 가피가 항상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임진년壬辰年, 용龍의 해를 맞이합니다. 용은 우리나라 민속에서는 예로부터 신령스런 동물로 봉황 기린 거북과 함께 4영靈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또한 용은 비를 가져오는 신묘함을 갖추고 있어서 풍요와 상서로움을 상징하고, 용안 용상 곤룡포로 불리듯 왕을 지칭하여 권위 희망을 뜻하기도 합니다. 불교에서도 용은 천용팔부天龍八部에 속하여 불법을 옹호하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고 있고, 용궁은 불경을 가져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묘법연화경'에서는 서품에서 잡중으로 등장하고 제바달다품에서는 사가라용왕의 8세 딸이 성불하는 모습으로 나오듯이 그 역할과 의미하는 바가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임진년이란 육십갑자에서 유래한 해의 구분으로 음력으로는 1월 1일(양력으로는 1월 23일)부터 시작합니다. 임壬은 주역 오행 10간刊 중에 수水에 해당하고 색으로는 검은색을 뜻하며, 용은 12간지중에는 다섯 번째 동물이며 동남향을 뜻한다고 합니다. 특히 올해를 흑룡이라 하는 것은 용을 뜻하는 진辰이 들어간 다섯 해, 곧 갑진甲辰 병진丙辰 무진戊辰 경진庚辰 임진壬辰이 있는데 오행으로 보면 각각 청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을 가리키고 있어서 임진년을 흑룡의 해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용의 해를 맞아 우리 법화행자들은 용의 장점을 취하여 항상 희망을 가지고 부지런히 일하고 수행하여 신묘한 용의 위의와 풍요를 가져오는 용의 위신력을 닮도록 열심히 노력하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소한 대한이 지나고 입춘은 24절기 가운데 첫 번째 절기입니다. 태양의 황경이 315도인 때로서 양력으로 2월 4일 무렵입니다. 음력으로는 정월에 들기도 하고 섣달에 들기도 합니다. 입춘은 새해를 맞이하는 절기로 봄이 시작되는 때입니다. 여러 가지 민속행사 중 대표적인 것은 좋은 뜻의 글귀를 써서 대문이나 기둥 또는 들보 등에 붙이는 일입니다.
이것을 입춘첩立春帖이라 하며, 또는 입춘축立春祝이라고도 합니다. 궁중에서는 설날에 내전內殿 기둥과 난간에다 문신文臣들이 지은 연상시延祥詩 가운데 좋은 것을 뽑아 써 붙였는데 이를 춘첩자春帖子라 불렀습니다.
절기상으로 입춘은 동지冬至 이후 음陰의 기운을 지니던 대지가 양陽의 기운을 갖기 시작하며 모든 사물이 왕성히 생동하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입춘 전날이 절분節分인데 이것은 철(시절時節, 계절季節)의 마지막이란 뜻입니다. 이날 밤을 ‘해넘이’라 부르고,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계절은 아직 겨울인지라, 마음으로는 봄이라지만 추위가 강하여 ‘입춘추위’라는 말이 있으나, 가시지 않은 찬 기운이 봄에 따사로움으로 변하기를 기대하는 심정에서 연유된 말이며 풍습들입니다.
입춘을 맞으면서 입춘축立春祝이 의미하는 좋은 일들이 가내家內에 만당滿堂하기를 기원祈願하는 뜻에서 몇 가지 예를 소개합니다.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 입춘에는 크게 좋은 일이 있고, 새해가 시작함에 경사스런 일이 많기를 바랍니다.
*수여산壽如山 부여해富如海 : 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유해지길 바랍니다.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 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 :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온갖 복이 들어오기를 바랍니다.
*부모천년수父母千年壽 자손만세영子孫萬歲榮 : 부모님은 오래 사시고, 자손은 길이 영화를 누리리라.
*용수오복龍受五福 호축삼재虎逐三災 : 용은 오복을 들여오고 호랑이는 재앙을 쫓아낸다.
*국태민안國泰民安 가급인족家給人足 :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여 집집마다 풍족하고 사람마다 넉넉하다.
*우순풍조雨順風調 시화풍년時和豊年 : 절기가 순조로우니 화평하고 풍성한 세월이 되겠네.
*천하태평天下泰平 사방무일사四方無一事 : 온 세상 태평한 봄이요, 사방 어느 곳에도 탈이 없기를 바랍니다.
음력 2월 8일은 부처님께서 출가出家하신 날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원래 인도 정반왕의 태자로 왕궁에서 나와 구도求道길에 들어가신 날이 바로 이날입니다. 후일 성도成道하셔서 부처님이 되시고, 법륜法輪을 굴리셔서 일찍이 없었던 진리를 밝혀 불교가 있게 하셨지만 만약 출가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었겠습니까. 불문佛門에 사대명절四大名節 출가절出家節이 있게 된 동기動機입니다. 왕위를 계승할 태자이셨고 그 총명한 자질로 인해 온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셨을 뿐 아니라, 야수다라라는 아름다운 부인과 사랑하는 아들 라후라가 있었으며, 궁중 생활은 즐겁고 유복有福하여 복이라는 복은 모두 갖추고 계셨지만 싣달다悉達多 태자는 괴로워 하셨습니다. 중아함경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남이 늙고 병들어서 괴로움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도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다. 남이 죽는 것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나는 남이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을 보고 그것을 내일로 여겨 괴로워하고 싫어하며, 부끄러워하고 나의 젊음에 대한 교만, 건강에 대한 교만, 수명에 대한 교만을 버렸다." 곧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괴로움에 대해 싣달다 태자는 스스로 눈을 뜨심으로 세속의 부귀영화富貴榮華는 물거품 같은 것임을 아셨으니, 출가의 선택은 참으로 현명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현명한 행동 그 이상의 것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더구나 태자의 신분으로서 왕궁의 생활을 포기하는 데에는 크나큰 결단이 따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두를 버리고 출가하셨던 그 용기는 곧바로 마魔를 항복 받고 정등정각正等正覺을 이루신 큰 힘이 된 것입니다. 후세의 사람들이 싣달다 태자의 출가를 일러 위대한 포기抛棄라고 찬탄하고 있습니다. 물론 법화경 본문本門에서는 석가모니불이 구원실성 본불本佛이심이 밝혀진 바, 부처님은 영원한 과거에 성불하신 분이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날의 위대한 출가의 참된 의의가 감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원한 부처님이 법신法身이나 보신報身을 수적垂迹하여 역사적 불타佛陀인 응신應身으로 몸을 나투신 응화에 의依해서만 중생을 교화하실 수 있는 까닭이며, 영원한 본불本佛일지라도 출가하사 구도求道하신 일은 중생에 대한 자비의 실천을 보이신 것입니다. 싣달다 태자의 현명한 판단과 결연한 의지를 본받아 흐트러지기 쉬운 우리들의 신심을 가다듬어야 되겠습니다.
2월 15일은 부처님께서 2556년 전에 열반涅槃(니르바나Nirvana:멸滅, 적멸寂滅, 무위無爲, 공적空寂하여 안온하므로 적寂 생사고해를 멸하므로 멸滅, 멸도, 생사의 인과를 멸하고 생사의 고해를 건너는 것. 일체의 번뇌와 고통을 영원히 끊어 버린 경지. 원적圓寂, 무위, 무작, 무생, 해탈이라 번역)하신 열반절입니다. 물론 불문佛門의 사대명절의 하나로 부처님께서 몸소 적멸(죽음)에 대해 모범을 보이신 날입니다.
“이때 나와 여러 중승衆僧이 함께 영축산에 나와, 내가 중생에게 말하되, 항상 여기에 있어 멸하지 아니하건만 방편력을 쓰는 고로 멸滅과 불멸不滅이 있음을 나타내노라.” (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20)
시아급중승 구출영축산 아시어중생 상재차불멸 이방편력고 현유멸불멸
時我及衆僧 俱出靈鷲山 我時語衆生 常在此不滅 以方便力故 現有滅不滅
부처님께서는 무시무종無始無終 영원히 항상 이 사바세계에 머물러 계십니다. 그러한 부처님께서 왜 입멸入滅 돌아가시는 것일까. 이것이 커다란 의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시는 것은 죽는다고 하지 않고 열반涅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부처님의 열반과 범부凡夫의 죽음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죽는[入滅]형상은 모두 같지만 그 내용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간략히 말하면 열반은 생사生死를 내 뜻대로 자유롭게 하는 것이요, 죽음은 그 반대로 생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는 생사를 여의고 자기 마음대로 생사를 맞이하는 것이요, 하나는 생사를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뜻에 따라 이 세상에 출생하시고 돌아가실 때에는 당신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돌아가시는 것이니 이것이 곧 열반인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우리 중생들은 이 세상에 출생한 것은 출생하고 싶어서 출생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전세에 지은 업의 분한分限에 의해서 출생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인간의 모습으로 출생하신 이상 무상한 현상의 육신은 인연에 의해서 변하여 멸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현상은 역사적으로 생물학적으로 보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종교적으로 신앙적으로 볼 때 이런 일반적인 설명만으로는 흡족 할 수가 없으니, 진실로 부처님의 열반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방법의 힘을 쓰기 때문)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왜 이러한 방편을 왜 쓰셨을까. 그것은 어리석은 중생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만일 여래가 항상 있어 멸하지 않음을 보게 되면 곧 교만한 생각을 일으키어 싫어지며 게으름을 품어서 만나기 어려운 생각과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아니하리라.”(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10)
약견여래 상재불멸 변기교자 이회염태 불능생어난조지상공경지심
若見如來 常在不滅 便起憍恣 而懷厭怠 不能生於難遭之想恭敬之心
“항상 나를 보는 까닭으로 교만하고 방자한 마음을 내며 방일하고 오욕에 착해서 악도 중에 떨어지기 때문이니라.” (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24)
이상견아고 이생교자심 방일착오욕 타어악도중
以常見我故 而生憍恣心 放逸著五欲 墮於惡道中
우리들은 만약 부처님께서 항상 살아계셔서 가까이 모시고 끊임없이 교훈을 받고 있다면, 으레 그러려니 하고 크게 어렵고 고맙게 생각지 않을 뿐 아니라, 교만한 마음 방자한 마음 게으른 마음이 생겨서 존경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만나기 어려운 일을 만났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 결과 생사해탈의 훌륭한 법문을 듣고도 실행에 옮기지 않아서 마침내 악도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부처님께서 항상 이 세상에 계시는 고마운 일이 중생에게는 도리어 해가 될 것이므로, 그들에게 큰 놀라움을 주시어 각성케 하여 부지런히 정진하게 하시고자 입멸에 드는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중생들은 몹시 놀라고 평소에 그러려니 하던 어리석은 생각을 뉘우치고 참회하고 반성하여 그리워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세속에서는 부모가 계실 때에는 부모가 보살펴 주심에 소홀히 예사로 생각하고 허물없이 되어서 이르는 말도 잘 듣지 않던 자식들이 뜻밖에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면 그제야 슬퍼하고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래수량품에는 독약을 먹고 본심을 잃은 아들들이 뜻밖에 먼 외국에 나가있는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서,
“만약 아버지가 계시면 우리들을 사랑하고 불쌍히 생각하시어 능히 구해서 지켜주시련만 지금은 우리를 버리시고 먼 다른 나라에 가셔서 세상을 떠나셨도다.”(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16)
약부재자 자민아등 능견구호 금자사아 원상타국 자유고로 무부시호
若父在者 慈愍我等 能見救護 今者捨我 遠喪他國 自惟孤露 無復恃怙
하고 슬퍼하여 마침내 본심을 되찾았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중생은 부처님의 입멸을 당하고서야 비로소 그 만나기 어려움을 알고 부처님을 그리워하고 진리를 알고자하는 마음이 생겨서 비로소 선근을 닦게 되는 것이므로, 부처님은 불멸이시지마는 방편으로 열반의 상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항상 이 사바세계에 계시지마는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하여 입멸을 보여 주시는 것을 현멸現滅의 대자大慈라고 합니다. 중생을 위해서 나타나시고 사라지시고 하는 큰 자비야말로 부처님의 무한한 자비입니다. 이러한 대사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진정한 뜻은 끝내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영산법화사 사부대중 여러분!
입춘절과 출가일 열반일이 들어있는 2월을 맞아, 일터에서는 부지런히 일하고 도량에서는 열심히 정진하여 법화경의 진실한 뜻을 깨우쳐서 무량공덕과 구원실성 석가모니불의 가피가 항상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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