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0년 11월 - 벼에도 조생 중생 만생이 있다. - 행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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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산법화사 댓글 0건 조회 7,310회 작성일 19-08-26 15:45본문
나무묘법연화경
가을빛이 내리쬐면 들판에는 벼가 익어가기 시작합니다. 알찬 낱알을 많이 가질수록 머리를 깊이 숙인다고 하여 우리는 한낱 초목으로부터도 우리는 삶의 지혜를 배웁니다. 그런데 벼에도 조생早生, 중생中生, 만생晩生의 세 종류가 있어서 그해 안에 모두 추수하듯이, 사람들 중에도 상⦁중⦁하의 차별이 있지만 부처님은 일체중생을 평등하게 사랑하시므로 똑같이 불도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중생들은 가지가지 인연으로 무량한 중생들이 있습니다. 누생을 거치면서 크고 작은 선업 악업으로 욕망이 다르고 성품이 다르고 근기가 달라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각각 다 다릅니다. 이런 중생들에 대해서 부처님은 무량한 법을 설하셔서 이 무량한 중생들을 제도 하는데, 근기가 낮고 가난하고 못생겼다고 법을 조금만 주고 작은 법을 주며, 근기가 뛰어나고 부자이고 잘 생겼다고 법을 많이 주고 큰 법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항상 중생을 평등하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대자대비를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법화경 방편품에는 부처님은 일대사 인연으로 출현하여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불지견을 열어서 보여서 깨달아 들어가게 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곧 부처님은 일체중생들이 근기가 높고 낮음을 차별하지 않고 삼승의 법을 열어서 결국에는 모두 일불승 불도에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약초유품에 말씀하시기를,
“삼천대천세계의 산천 계곡과 땅위에 나는 모든 초목이며 숲이며 약초들의 종류가 여러 가지이니 각각 색과 이름이 다르니라. 가득 찬 구름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어서 일시에 큰 비가 고루 내려 널리 흡족하면 모든 초목과 숲이며 약초의 작은 뿌리 작은 줄기 작은 가지 작은 잎새와 중간 뿌리 중간 줄기 중간 가지 중간 잎새와 큰 뿌리 큰 줄기 큰 가지와 큰 잎새와 크고 작은 모든 나무의 상 중 하에 따라 각기 받아들이느니라.
같은 구름의 비에 그 종류와 성질에 맞추어 생장하며 꽃과 열매를 맺느니라. 비록 한 땅에서 나고 같은 비에 젖으나 모든 초목이 각각 차별이 있느니라.”
삼천대천세계 산천계곡토지소생훼목총림급제약초 종류약간,명색각이
三千大千世界,山川谿谷土地所生卉木叢林及諸藥草,種類若干,名色各異。
밀운미포,변부삼천대천세계,일시등주,기택보흡。훼목총림급제약초
密雲彌布,遍覆三千大千世界,一時等澍,其澤普洽。卉木叢林及諸藥草,
소근소경、소지소엽,중근중경、중지중엽,대근대경、대지대엽,제수대소
小根小莖、小枝小葉,中根中莖、中枝中葉,大根大莖、大枝大葉,諸樹大小,
수상중하각유소수。일운소우,칭기종성이득생장화과부실。수일지소생
隨上中下各有所受。一雲所雨,稱其種性而得生長華菓敷實。雖一地所生,
일우소윤,이제초목,각유차별。
一雨所潤,而諸草木,各有差別。
(금장본 약초유품, p.314)
한 구름은 부처님을 뜻하고 비를 내림은 부처님의 설법을 가리킵니다. 같은 구름아래에서 내리는 한 맛 빗물을 받고 삼천대천세계의 초목들이 자라는데 소초 중초 대초 소수 대수로 이와 같이 생장합니다. 이것은 초목들 각자의 타고난 성품과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 차별이 생긴 것입니다. 곧 한맛 빗물은 일불승 교법을 말하고, 3초 2목은 인천 이승(성문 연각) 장교 통교 별교의 방편(5승 7방편)을 뜻하니 이를 교법으로 보면 삼승법이 됩니다. 결국 한 맛 빗물로 천하의 초목을 적시듯, 부처님은 일불승의 법문으로 근기에 맞추어 방편의 삼승을 설한 것이었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화택의 비유에도 부처님이 불타는 집안에 있는 아들을 위하여 아들들이 평소에 좋아하던 양의 수레 사슴의 수레 소의 수레를 준다고 하여 불타는 집안에 있는 아들들은 집밖으로 나오게 한 다음 본래 준비해 두었던 대력 백우거를 하나씩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모든 아들을 똑같이 사랑하기 때문에 가장 크고 힘이 센 대력백우거를 준 것이었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소의 수레 사슴의 수레 양의 수레를 나누어 주었다면 이는 아들을 차별하는 것이 됩니다.
가을 들녘의 벼가 조생 중생 만생이 있듯이 우리 중생들은 바라는 바가 다르고 성품과 능력이 다르지만, 모두 가을에 추수하여 거두어들이듯이 부처님도 동체대비 대자대비로 똑같이 다 불도로 이끌어 들이신다는 것입니다.
법화경의 가장 큰 특징은 삼주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 한다는 것입니다. 곧 중생들의 성품과 능력이 다르므로 법설 비유설 숙세인연설의 세 번에 걸쳐 제도하는 것입니다.
법설의 내용은 법의 실상을 밝히기 때문에 난해한 법문이므로 비유설에서 이를 갖가지 비유로 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법화경의 법화칠유는 이러한 비유설의 3가지 비유 외에 화성의 비유, 옷 속의 보배구슬의 비유, 계명주의 비유, 의사의 비유를 들어서, 근기에 맞추어 일체중생을 불도에 인도하는 부처님의 본회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근기下根機인 사람들은 법설 비유설에도 법의 이익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부처님께서 지금 법을 듣는 제자들과 부처님 사이에 진점겁塵點劫 전에 법화경에 의해 인연 맺은 바가 있음을 깨우쳐 주어, 모두 일불승 부처님 진실의 일불승도에 나아가게 되어 부처님으로부터 성불의 수기를 받게 됩니다. 특히 이 인연설은 숙세인 헤아릴 수 없는 과거 진점겁 때 대통지승불에 의해 묘법연화경으로 교화 받은 16보살사미들이 다시 '묘법연화경'으로 수많은 중생들을 교화하였고, 이 같은 묘법연화경의 교화로 16방에 부처님이 되셨으니 맨 마지막이 석가불이라는 것이다. 이때 일불승의 교화를 받은 중생들이 그동안 돌고 돌아서 현재 영축산 법화회상의 중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나고 죽고 다시 나서 온갖 세계를 윤회전생하면서 어떤 사람은 일불승 불성을 잘 간직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그 일불승 불성에 때가 묻어서 상 중 하의 근기를 갖추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듯 과거에 '묘법연화경'에 의해 일불승의 교화인敎化因을 심어 놓았기 때문에 현재 그 결과로 다시 법화경을 인연으로 영축산법회에서 법화경으로 석가모니부처님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축산에서 교화를 받게 된 것은 모름지기 봄에 씨를 뿌려(종種), 여름을 지나면서 성장하고(숙熟), 가을에 성숙하여 추수하게 되는 것(탈脫)처럼, 부처님도 과거 숙세에 '묘법연화경'에 의해 일불승 불성을 심어서 현재 부처님 회상에서 성숙해 부처님 법문을 듣고 깨달음이 열려 불도를 이루리라는 수기를 받게 된 것입니다.
예컨대 법화경에 나오는 사리불은 석가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바로 그 자리에서 부처님의 깊은 뜻을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석가세존께서 「그대는 장차 부처님이 될 것이다.」라고 부처님이 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이런 경우는 근기가 매우 뛰어난 사람으로 들으면 바로 깨달음입니다. 그 깨달음으로 바로 부처님의 경계에 도달할 가망성이 있는 것입니다.
중근인 사람은 위의 사람보다 근기는 다소 열등하지만 하루 이틀 한 달 혹은 얼마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처음 한번 들어서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혹은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만 완전히 이해해서 내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수행을 쌓아가는 사이에 차차 부처님이 될 본성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하근기인 사람 곧 근기가 가장 낮은 사람은 본래 지니고 있는 성질이 좀처럼 신장伸長되지 못하고 앞이 꽉 막힌 것 같지만 어떻든 인간은 부처님이 될 본성이 있으므로 그것이 언젠가는 나타나게 되어 있고 임종 때 곧 이 세상에 생애를 마칠 때가 되었을 때 신심만 굳건하다면 지금까지의 꿈을 깨고 현실로 돌아온 것처럼 지금까지 떨쳐내지 못하고 있던 세상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생사망상生死妄想이라고 하는데 생사는 인생의 변화를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의 변화에 마음이 끌리니 시종 헤매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의 여러 가지 망상이 일어나고 갖가지 번뇌가 생기게 됩니다. 이런 번뇌가 임종 때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도리가 아닌 것을 도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처럼 삐뚤어진 마음가짐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참다운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원래 인간은 깨달을 수 있는 본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 본성이 발휘되고 깨달은 상태로 돌아오게 되면 이 세상이 바로 적광寂光의 극락입니다. 부처님의 세계를 딴 데서 찾아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지금 있는 이 땅이 곧 극락인 것이며 정토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매우 천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육신이 삼신즉일 본각의 부처님이다. 나는 부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므로 자신이 귀한 존재라는 자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을에 영그는 벼도 조생, 중생, 만생종이 서로 차이가 있어서 똑 같은 때 뿌려도 수확할 때는 일찍 수확하고 늦게 수확하는 차이는 있지만 한해 안에 빠르건 늦건 수확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근기도 상⦁중⦁하의 차별은 있어도 모두 불성을 갖추고 있으므로 그 수행의 길, 방법만 바르게 하면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언젠가는 부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수행의 길을 잘못 들면 안 됩니다. 법화경이라는 최상의 경전에 따라 수행하면 비록 근기가 옅은 자라도 결국 부처님의 경지에 이룰 수 있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근기에 맞게 아무리 좋은 법을 설하여도 이를 실천하고 자는 의지가 없으면 모두 소용이 없습니다. 법화행자는 무릇 상불경보살처럼, 일체중생희견보살 처럼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법화경에도 말씀하시기를, “재가이거나 혹은 출가하여 보살도를 행함에 만일 이 법화경을 보고 듣고 읽고 외우고 써 가지고 공양하지 않는 자는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보살도를 잘 행하지 못함이라. 만일 이 경전을 얻어 듣는 자는 즉 능히 보살도를 잘 행함이요, 중생에 불도를 구하는 자가 있어 이 법화경을 혹은 보고 혹은 들으며, 듣고서 믿고 해석하며, 받아가지는 자는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움이라”(법사품, p.518)
다유인재가、출가행보살도,약불능득견문、독송、서지、공양시법화경자
多有人在家、出家行菩薩道,若不能得見聞、讀誦、書持、供養是法華經者,
당지시인미선행보살도;약유득문시경전자,내능선행보살지도
當知是人未善行菩薩道;若有得聞是經典者,乃能善行菩薩之道。
기유중생구불도자,약견、약문시법화경,문이신해수지자
其有眾生求佛道者,若見、若聞是法華經,聞已信解受持者,
당지시인득근아뇩다라삼먁삼보리
當知是人得近阿耨多羅三藐三菩提。
라고 하셨습니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항상 경계하신 바는 게으름피우지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우물을 파는 사람이 처음에는 마른 흙이 나오지만, 점점 열심히 파 들어가면 젖은 흙이 나오고, 이어서 물줄기가 나온다는 비유로 우리가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 지를 보여줍니다.
법화경에서 이와 같이 삼주설법으로 법을 펴는 것은 우리에게는 누구나 세 가지 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불경보살같은 분은 일체중생을 부처님으로 볼 수 있는 정인불성이 있고, 사리불 같은 분은 지혜로 부처님법문을 듣고 깨달음이 열린 요인불성이 있고, 학 무학의 우리 보통 범부들도 숙세의 인연을 듣고 숙세에 이미 법화경을 들은 선근이 있음을 깨닫고 선근을 닦아 지혜를 개발해서 불도에 들어 갈 수 있는 연인불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법화행자 여러분!
법화경의 무량공덕과 부처님의 가피가 항상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가을빛이 내리쬐면 들판에는 벼가 익어가기 시작합니다. 알찬 낱알을 많이 가질수록 머리를 깊이 숙인다고 하여 우리는 한낱 초목으로부터도 우리는 삶의 지혜를 배웁니다. 그런데 벼에도 조생早生, 중생中生, 만생晩生의 세 종류가 있어서 그해 안에 모두 추수하듯이, 사람들 중에도 상⦁중⦁하의 차별이 있지만 부처님은 일체중생을 평등하게 사랑하시므로 똑같이 불도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중생들은 가지가지 인연으로 무량한 중생들이 있습니다. 누생을 거치면서 크고 작은 선업 악업으로 욕망이 다르고 성품이 다르고 근기가 달라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각각 다 다릅니다. 이런 중생들에 대해서 부처님은 무량한 법을 설하셔서 이 무량한 중생들을 제도 하는데, 근기가 낮고 가난하고 못생겼다고 법을 조금만 주고 작은 법을 주며, 근기가 뛰어나고 부자이고 잘 생겼다고 법을 많이 주고 큰 법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항상 중생을 평등하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대자대비를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법화경 방편품에는 부처님은 일대사 인연으로 출현하여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불지견을 열어서 보여서 깨달아 들어가게 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곧 부처님은 일체중생들이 근기가 높고 낮음을 차별하지 않고 삼승의 법을 열어서 결국에는 모두 일불승 불도에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약초유품에 말씀하시기를,
“삼천대천세계의 산천 계곡과 땅위에 나는 모든 초목이며 숲이며 약초들의 종류가 여러 가지이니 각각 색과 이름이 다르니라. 가득 찬 구름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어서 일시에 큰 비가 고루 내려 널리 흡족하면 모든 초목과 숲이며 약초의 작은 뿌리 작은 줄기 작은 가지 작은 잎새와 중간 뿌리 중간 줄기 중간 가지 중간 잎새와 큰 뿌리 큰 줄기 큰 가지와 큰 잎새와 크고 작은 모든 나무의 상 중 하에 따라 각기 받아들이느니라.
같은 구름의 비에 그 종류와 성질에 맞추어 생장하며 꽃과 열매를 맺느니라. 비록 한 땅에서 나고 같은 비에 젖으나 모든 초목이 각각 차별이 있느니라.”
삼천대천세계 산천계곡토지소생훼목총림급제약초 종류약간,명색각이
三千大千世界,山川谿谷土地所生卉木叢林及諸藥草,種類若干,名色各異。
밀운미포,변부삼천대천세계,일시등주,기택보흡。훼목총림급제약초
密雲彌布,遍覆三千大千世界,一時等澍,其澤普洽。卉木叢林及諸藥草,
소근소경、소지소엽,중근중경、중지중엽,대근대경、대지대엽,제수대소
小根小莖、小枝小葉,中根中莖、中枝中葉,大根大莖、大枝大葉,諸樹大小,
수상중하각유소수。일운소우,칭기종성이득생장화과부실。수일지소생
隨上中下各有所受。一雲所雨,稱其種性而得生長華菓敷實。雖一地所生,
일우소윤,이제초목,각유차별。
一雨所潤,而諸草木,各有差別。
(금장본 약초유품, p.314)
한 구름은 부처님을 뜻하고 비를 내림은 부처님의 설법을 가리킵니다. 같은 구름아래에서 내리는 한 맛 빗물을 받고 삼천대천세계의 초목들이 자라는데 소초 중초 대초 소수 대수로 이와 같이 생장합니다. 이것은 초목들 각자의 타고난 성품과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 차별이 생긴 것입니다. 곧 한맛 빗물은 일불승 교법을 말하고, 3초 2목은 인천 이승(성문 연각) 장교 통교 별교의 방편(5승 7방편)을 뜻하니 이를 교법으로 보면 삼승법이 됩니다. 결국 한 맛 빗물로 천하의 초목을 적시듯, 부처님은 일불승의 법문으로 근기에 맞추어 방편의 삼승을 설한 것이었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화택의 비유에도 부처님이 불타는 집안에 있는 아들을 위하여 아들들이 평소에 좋아하던 양의 수레 사슴의 수레 소의 수레를 준다고 하여 불타는 집안에 있는 아들들은 집밖으로 나오게 한 다음 본래 준비해 두었던 대력 백우거를 하나씩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모든 아들을 똑같이 사랑하기 때문에 가장 크고 힘이 센 대력백우거를 준 것이었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소의 수레 사슴의 수레 양의 수레를 나누어 주었다면 이는 아들을 차별하는 것이 됩니다.
가을 들녘의 벼가 조생 중생 만생이 있듯이 우리 중생들은 바라는 바가 다르고 성품과 능력이 다르지만, 모두 가을에 추수하여 거두어들이듯이 부처님도 동체대비 대자대비로 똑같이 다 불도로 이끌어 들이신다는 것입니다.
법화경의 가장 큰 특징은 삼주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 한다는 것입니다. 곧 중생들의 성품과 능력이 다르므로 법설 비유설 숙세인연설의 세 번에 걸쳐 제도하는 것입니다.
법설의 내용은 법의 실상을 밝히기 때문에 난해한 법문이므로 비유설에서 이를 갖가지 비유로 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법화경의 법화칠유는 이러한 비유설의 3가지 비유 외에 화성의 비유, 옷 속의 보배구슬의 비유, 계명주의 비유, 의사의 비유를 들어서, 근기에 맞추어 일체중생을 불도에 인도하는 부처님의 본회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근기下根機인 사람들은 법설 비유설에도 법의 이익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부처님께서 지금 법을 듣는 제자들과 부처님 사이에 진점겁塵點劫 전에 법화경에 의해 인연 맺은 바가 있음을 깨우쳐 주어, 모두 일불승 부처님 진실의 일불승도에 나아가게 되어 부처님으로부터 성불의 수기를 받게 됩니다. 특히 이 인연설은 숙세인 헤아릴 수 없는 과거 진점겁 때 대통지승불에 의해 묘법연화경으로 교화 받은 16보살사미들이 다시 '묘법연화경'으로 수많은 중생들을 교화하였고, 이 같은 묘법연화경의 교화로 16방에 부처님이 되셨으니 맨 마지막이 석가불이라는 것이다. 이때 일불승의 교화를 받은 중생들이 그동안 돌고 돌아서 현재 영축산 법화회상의 중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나고 죽고 다시 나서 온갖 세계를 윤회전생하면서 어떤 사람은 일불승 불성을 잘 간직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그 일불승 불성에 때가 묻어서 상 중 하의 근기를 갖추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듯 과거에 '묘법연화경'에 의해 일불승의 교화인敎化因을 심어 놓았기 때문에 현재 그 결과로 다시 법화경을 인연으로 영축산법회에서 법화경으로 석가모니부처님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축산에서 교화를 받게 된 것은 모름지기 봄에 씨를 뿌려(종種), 여름을 지나면서 성장하고(숙熟), 가을에 성숙하여 추수하게 되는 것(탈脫)처럼, 부처님도 과거 숙세에 '묘법연화경'에 의해 일불승 불성을 심어서 현재 부처님 회상에서 성숙해 부처님 법문을 듣고 깨달음이 열려 불도를 이루리라는 수기를 받게 된 것입니다.
예컨대 법화경에 나오는 사리불은 석가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바로 그 자리에서 부처님의 깊은 뜻을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석가세존께서 「그대는 장차 부처님이 될 것이다.」라고 부처님이 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이런 경우는 근기가 매우 뛰어난 사람으로 들으면 바로 깨달음입니다. 그 깨달음으로 바로 부처님의 경계에 도달할 가망성이 있는 것입니다.
중근인 사람은 위의 사람보다 근기는 다소 열등하지만 하루 이틀 한 달 혹은 얼마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처음 한번 들어서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혹은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만 완전히 이해해서 내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수행을 쌓아가는 사이에 차차 부처님이 될 본성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하근기인 사람 곧 근기가 가장 낮은 사람은 본래 지니고 있는 성질이 좀처럼 신장伸長되지 못하고 앞이 꽉 막힌 것 같지만 어떻든 인간은 부처님이 될 본성이 있으므로 그것이 언젠가는 나타나게 되어 있고 임종 때 곧 이 세상에 생애를 마칠 때가 되었을 때 신심만 굳건하다면 지금까지의 꿈을 깨고 현실로 돌아온 것처럼 지금까지 떨쳐내지 못하고 있던 세상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생사망상生死妄想이라고 하는데 생사는 인생의 변화를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의 변화에 마음이 끌리니 시종 헤매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의 여러 가지 망상이 일어나고 갖가지 번뇌가 생기게 됩니다. 이런 번뇌가 임종 때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도리가 아닌 것을 도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처럼 삐뚤어진 마음가짐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참다운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원래 인간은 깨달을 수 있는 본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 본성이 발휘되고 깨달은 상태로 돌아오게 되면 이 세상이 바로 적광寂光의 극락입니다. 부처님의 세계를 딴 데서 찾아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지금 있는 이 땅이 곧 극락인 것이며 정토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매우 천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육신이 삼신즉일 본각의 부처님이다. 나는 부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므로 자신이 귀한 존재라는 자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을에 영그는 벼도 조생, 중생, 만생종이 서로 차이가 있어서 똑 같은 때 뿌려도 수확할 때는 일찍 수확하고 늦게 수확하는 차이는 있지만 한해 안에 빠르건 늦건 수확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근기도 상⦁중⦁하의 차별은 있어도 모두 불성을 갖추고 있으므로 그 수행의 길, 방법만 바르게 하면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언젠가는 부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수행의 길을 잘못 들면 안 됩니다. 법화경이라는 최상의 경전에 따라 수행하면 비록 근기가 옅은 자라도 결국 부처님의 경지에 이룰 수 있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근기에 맞게 아무리 좋은 법을 설하여도 이를 실천하고 자는 의지가 없으면 모두 소용이 없습니다. 법화행자는 무릇 상불경보살처럼, 일체중생희견보살 처럼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법화경에도 말씀하시기를, “재가이거나 혹은 출가하여 보살도를 행함에 만일 이 법화경을 보고 듣고 읽고 외우고 써 가지고 공양하지 않는 자는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보살도를 잘 행하지 못함이라. 만일 이 경전을 얻어 듣는 자는 즉 능히 보살도를 잘 행함이요, 중생에 불도를 구하는 자가 있어 이 법화경을 혹은 보고 혹은 들으며, 듣고서 믿고 해석하며, 받아가지는 자는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움이라”(법사품, p.518)
다유인재가、출가행보살도,약불능득견문、독송、서지、공양시법화경자
多有人在家、出家行菩薩道,若不能得見聞、讀誦、書持、供養是法華經者,
당지시인미선행보살도;약유득문시경전자,내능선행보살지도
當知是人未善行菩薩道;若有得聞是經典者,乃能善行菩薩之道。
기유중생구불도자,약견、약문시법화경,문이신해수지자
其有眾生求佛道者,若見、若聞是法華經,聞已信解受持者,
당지시인득근아뇩다라삼먁삼보리
當知是人得近阿耨多羅三藐三菩提。
라고 하셨습니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항상 경계하신 바는 게으름피우지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우물을 파는 사람이 처음에는 마른 흙이 나오지만, 점점 열심히 파 들어가면 젖은 흙이 나오고, 이어서 물줄기가 나온다는 비유로 우리가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 지를 보여줍니다.
법화경에서 이와 같이 삼주설법으로 법을 펴는 것은 우리에게는 누구나 세 가지 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불경보살같은 분은 일체중생을 부처님으로 볼 수 있는 정인불성이 있고, 사리불 같은 분은 지혜로 부처님법문을 듣고 깨달음이 열린 요인불성이 있고, 학 무학의 우리 보통 범부들도 숙세의 인연을 듣고 숙세에 이미 법화경을 들은 선근이 있음을 깨닫고 선근을 닦아 지혜를 개발해서 불도에 들어 갈 수 있는 연인불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법화행자 여러분!
법화경의 무량공덕과 부처님의 가피가 항상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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