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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법문

불기 2557년 06월 - 부처님 사리탑을 공양함 ; 모든 법이 본래부터 공적하다.諸法本來空寂 - 행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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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산법화사 댓글 0건 조회 6,616회 작성일 19-08-2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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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묘법연화경

 법화경에서 보여준 부처님 일대의 교화법식은 정각을 이루고 방편을 열어서 진실로 인도하시는 개권현실開權顯實로 일체중생을 제도하시고 반열반般涅槃에 들면, 중생들은 사리탑을 세워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고 정법을 잘 받들어 실천하는 것입니다.
 조사 큰스님께서는 불기 2513년 태세 기유년 8월 29일 장흥의 본당에서 정법홍포와 국태민안 그리고 영산법화사의 만년 대계를 위하여 불사리탑을 세우기로 서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유지를 받들어 불사를 시작하였고, 지금으로부터 6년 전 불기 2551년(2007년) 10월 3일 개천절 상달에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 성불산에 위용도 당당하게 세계평화 불사리탑을 건립하였습니다.

 '묘법연화경' 견보탑품에는 “내가 멸도한 후 나의 전신을 공양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큰 탑을 일으켜 세우라.”고 하셨으니 이와 같이 혁혁한 유칙은 천인 대중 중에서 특히 모든 비구에게 고칙告勅하신 금언金言입니다. 대저 불법 중에 출가한 모든 비구 중에 그 누가 감히 이 봉조鳳詔를 어길 것이며 기탑공양起塔供養의 대불사를 등한 시 할 것이뇨. 본래 보탑 건립은 다보불의 일대서원一大誓願이었지마는 동시에 석가모니 세존의 금구金口 범음梵音이기도 합니다. 고불古佛의 서원과 금불今佛의 설법이 다 같이 내세의 비구 중에게 보탑건립을 엄장嚴獎하시고 엄명嚴命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법화경에는 삼세부처님이 한결같이 부처님의 사리탑을 세워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세 법의 증표로 삼아 '묘법연화경'의 부처님 정법을 실천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리탑을 장엄하고 공양하는 것은 법화행자의 수행이고 불도를 이루는 길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서품」에는 방광을 통하여 부처님 일대의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부처님께서 정법으로 교화하시고 열반에 드시자 대중들이 칠보의 사리탑을 세워 공양하고 장엄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으니 이는 세세생생 우리불자의 의무임을 실상의 경계로 현현하신 것입니다.
 
 「방편품」(금장본 '법화삼부경', p.122-124 참조)에서는
 부처님의 출세하신 본회가 일체중생을 불도로 이끌어 들이기 위함이었으므로, 보탑으로 부처님 사리탑을 새워 갖가지 보배로 장엄하고 공양하는 것도 불도를 이루는 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린아이가 소꿉장난하면서 부처님사리탑을 공양하는 일도 불도를 이루는 길이 된다고 설하고 있으니, 그 보탑을 공양하는 작은 선심善心이 연인불성緣因佛性이 되어 불도를 이루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바달다품」에서는 또한 보탑을 세우고 여기에 공양드리는 것이 불도를 이루는 길임을 제바달다 선인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사중에게 이르노라. 제바달다는 이후 한량없는 겁을 지나서 마땅히 성불하리니 이름은 천왕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세존이며 세계 이름은 천도라. 이 때에 천왕불이 세상에 머무름은 이십중겁이라. 널리 중생을 위하여 묘법을 설하리니 항하사 중생이 아라한과를 얻으며 한량없는 중생이 연각심을 발하며 항하사 중생이 위 없는 도심을 내어 무생인을 얻어 불퇴전에 이르리라. 그 때 천왕불이 열반에 든 후 정법이 세상에 머무름은 이십중겁이며, 전신사리로 칠보의 탑을 일으키되 높이는 육십유순이요 넓이는 사십유순이라. 모든 하늘과 사람이 다 여러 가지 꽃과 말향 소향 도향 의복 영락 당번 보개 기악 노래로 칠보의 묘탑을 예배 공양하리라. 한량없는 중생이 아라한과를 얻고 수없는 중생이 벽지불을 깨치며 불가사의의 중생이 보리심을 일으키어 불퇴전에 이르리라.”
(금장본 '법화삼부경' p.574~576)   
고제사중 제바달다 각후과무량겁 당득성불 호왈천왕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告諸四衆 諸婆達多 却後過無量劫 當得成佛 號曰天王如來 應供 正遍知 明行足 善逝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세존 세계명천도 시천왕불주세 이십중겁 광위중
世間解 無上士 調御丈夫 天人師 佛世尊 世界名天道 時天王佛住世 二十中劫 廣爲衆
생 설어묘법 항하사중생 득아라한과 무량중생 발연각심 항하사중생 발무상도심 득
生 說於妙法 恒河沙衆生 得阿羅漢果 無量衆生 發緣覺心 恒河沙衆生 發無上道心 得
무생인 지불퇴전 시천왕불 반열반후 정법주세 이십중겁 전신사리 기칠보탑 고육십
無生忍 至不退轉 時天王佛 般涅槃後 正法住世 二十中劫 全身舍利 起七寶塔 高六十
유순 종광사십유순 제천인민 실이잡화 말향 소향 도향 의복 영락 당번 보개 기악
由旬 縱廣四十由旬 諸天人民 悉以雜華 抹香 燒香 塗香 衣服 瓔珞 幢幡 寶蓋 伎樂
가송 예배공양칠보묘탑 무량중생 득아라한과 무량중생 오벽지불 불가사의중생 발보
歌頌 禮拜供養七寶妙塔 無量衆生 得阿羅漢果 無量衆生 悟辟支佛 不可思議衆生 發菩
리심 지불퇴전
提心 至不退轉

 세상에서 오역죄를 저지른 악인으로 널리 알려진 제바달다지만 옛적 선지식으로 태어나 '묘법연화경'으로 옛 석가모니를 제도한 적이 있고, 그 공덕으로 미래세 보살도를 행하여 불도를 이루어 천왕여래가 된다고 합니다. 천왕여래는 다시 20소겁이나 '묘법연화경'으로 널리 중생들을 제도한 후 열반에 드시니 이와 같이 보탑에 모시고 사리탑을 장엄하여 공양한 불자들이 삼승의 불도를 이루고 끝내 불퇴전에 이르러 불도에 나아간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사리탑을 장엄하고 공양하는 것은 부처님의 정법인 '묘법연화경'을 실천하는 것으로, 곧 우리 법화행자의 의무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사바세계에서 이러한 부처님의 정법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체법의 실상을 잘 알아야 합니다. 법화경의 서경인 '무량의경'에서는 일체법이 공함을 알아야 진실을 알 수 있다고 설합니다.
 
 모든 법이 본래부터 공적하건마는 바꾸어 말해서 머무르지 아니하며 순간순간에 나고 멸한다고 설하였노라.('무량의경, 설법품' 금장본 p.1058)
제법본래공적 대사부주 염념생멸
諸法本來空寂 代謝不住 念念生滅

 불교에서 “일체법이 무상無常하다. 공空하다”고 하여, 매사에 불교는 소극적이라고 비평하는 말을 곧잘 듣게 되는데, 아닌 게 아니라 불교는 무아無我니 아공我空이니 하는 말을 많이 합니다.  세존께서는 교단敎團에 들어오려는 사람에게 대해 제일 먼저 아집我執을 버려야 한다고 무아無我를 설하셨고 자기 자신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고 아공我空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집을 버리고 무아가 되었을 때야말로 비로소 아름답고 즐겁고 평화로운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꺼리는 ‘나’란 탐욕貪慾, 진에瞋恚, 우치愚癡에 더럽혀진 소아小我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와 같은 아집이 맹렬한 형세를 떨치고 있는 한, 사회의 평화는 끝내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불교사상사로 보면 공空사상은 초기불교에서 대승불교大乘佛敎에로 찬란한 발전을 이룩하여 초기불교의 공사상은 삼법인三法印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제행무상이란 고苦를 말하는 것이요,
 제법무아란 공空을 말하는 것이요,
 열반적정이란 낙樂을 말하는 것이다.
 이 삼법인에 따라 수행하는 불교도는 말할 것도 없이 그 소원인 괴로움을 없애고 즐거움을 얻으려면 모름지기 몸과 마음을 공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법화경은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십여시十如是로써 설하는데 그 십여시의 이치를 한마디로 간단히 말하면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합니다.

 일체의 법이 공空함을 관하되 실상實相과 같이하여 전도顚倒하지 않고 동動하지도 않으며 퇴退하지도 않고 전轉하지도 아니하며 허공과 같이 해서 있을 바의 성품도 없음이니 일체의 말도 도道도 끊어져서 생生하지도 않고 나[출出]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으며 이름도 없고 상相도 없어서 실로 소유所有도 없고 헤아림도 없고 끝도 없고 걸림도 없고 장애도 없건마는, (안락행품 제14 금장본 p616)
관일체법공 여실상 부전도 부동불퇴 부전여허공 무소유성
觀一切法空 如實相 不顚倒 不動不退 不轉如虛空 無所有性
일체어언도단 불생불출불기 무명무상 실무소유 무량무변 무애무장
一切語言道斷 不生不出不起 無名無相 實無所有 無量無邊 無礙無障

이라 하신 말씀에도 공의 뜻이 은연중 나타나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제법의 생生⋅주住⋅이異⋅멸滅의 네 가지 상을 말씀하시고 그것이 결국 돌아가는 곳은 공空이라 하시어 어느 한 가지 일정한 상에 집착하는 것을 허용許容하시지 않았습니다. 일체의 법의 진실한 상은 허공과 같아서 그것은 말이나 글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며, 결국 제법의 실상은 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원래 모든 것의 상은 공적空寂한 것으로서 언제나 일정한 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신진대사新陳代謝 합니다. 시시각각으로 나고 멸하고 일어나고 쓰러지고 합니다. 바로 공인 것입니다. 그러나 공은 무가 아니요, 어디까지나 공입니다. 유有와 무無를 초월한 것, 다시 말하여 유와 무를 지양止揚한 것, 양기揚棄한 것입니다. 유이기도 하고 무이기도 하고, 또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이것이 공입니다.
 물이 그릇에 따라 모양을 바꾸는 것은 물의 본래의 형체가 공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법의 실상도 공空입니다. 이러한 이치는 우리들 인간의 마음에도 적용適用됩니다. 인간의 마음도 또한 공이니,  온갖 인연에 의하여 온갖 상으로 변합니다. 위로는 부처님으로도 되고 아래로는 지옥도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한 아我이건마는, 우리는 현재의 소아小我에 사로잡혀서 그것을 진정한 ‘나’로 착각하고 그 나 만에 집착하여 익애溺愛하는 데서 세상에는 아我와 아와의 싸움이, 아욕我慾과 아욕과의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모든 것이 공임을 말씀하시고 이를 미루어 아공我空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공의 사상은 자연에 대해서나 인생에 대해서나 그 참된 상을 이해하는 유일한 길잡이가 됩니다. 우리가 범부의 눈으로 보아 실제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을 부인했을 때, 거기에 일체의 모든 것이 참된 상을 가지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집착된 나-소아小我를 버리지 않으면 참된 나-대아大我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일체를 부인하고 공에 철저했을 때 그것은 허무虛無가 아니라 공의 깊은 속에서 그 무엇인가가 참된 상을 가지고 나타나 옵니다. 이것을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실재實在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법화경은 진공묘유를 설합니다.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이란, 이 진공묘유의 상임을 알아야합니다. 앞서 말한 부처님의 상도 이 진공묘유의 법칙에 의해 생각해 알아서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말법세상에서 우리가 숭앙崇仰하는 바는 오직 구원실성의 석가모니불이요, 믿는 경은 실대승 말세구원의 묘법연화경이며, 성불의 정법正法 묘법연화경입니다.

 영산법화사 사부대중 여러분!
댁宅내에 법화경의 무량공덕과 부처님의 자비가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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