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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8년 05월 - 부처님 탄생 2638년을 맞이합니다. - 행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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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산법화사 댓글 0건 조회 6,668회 작성일 19-08-2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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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묘법연화경

 오는 5월 6일은 구원겁 전에 성불하신 부처님께서 2638년 전 인도의 카필라국 룸비니(지금의 네팔 타라이 지방)에서 우리들과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신 날입니다.
 '법화경' 「방편품」에서는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을 일대사인연으로 세상에 출현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까닭은 오탁악세에서 중생들이 생사고해에 빠져 있으므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불지견을 열어서 보여서 깨달아 들어가게 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과연 부처님께서는 룸비니에서 탄생하셔서 80의 생을 보이시면서 오직 중생의 고해를 건져 주시기 위해 지혜 법등을 밝혀 일체 중생을 제도하셨습니다.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성현도 보여주지 못한 가장 위대한 삶을 사셨고, 그 어떤 성현도 설하지 못한 위대한 자비법문으로 세상을 밝히신 것입니다. 「여래수량품」에서는 부처님께서는 구원겁 전에 성불 하시어 이래로 중생을 제도해 오셨지만, 이 사바세계 중생을 위해 카필라국에 왕자로 탄생하셔서 출가하시고 6년의 고행을 보이신 후, 보리수나무에서 성불하시고, 녹야원에서 설법을 시작해서 꾸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드실 때까지, 80평생 오직 불타는 집과 같은 육도윤회의 중생을 위해서 삼승三乘의 방편을 열어 일불승 진실의 불도로 인도하신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이 입멸하신 후의 중생을 위해서 '묘법연화경'을 비롯한 수많은 법문을 남기셨으니 그 법문이 바로 '대장경' 속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부처님께서 항상 중생을 위해 호념護念하시는 법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대한 법의 진실은 '묘법연화경' 속에 들어 있습니다.
 부처님은 샤카釋迦족이라는 부족의 왕의 태자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숫도다나이고 어머니는 마야라고 하며, 어머니는 동쪽 인근의 콜리야 출신 입니다. 아버지의 성은 코따마(Gotama, 한역 구담瞿曇), 이름은 싯달다(Siddhattha, 한역 실달다悉達多)이고, 그 의미는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왕자 코따마 싯다르타는 후에 출가하시어 부처님이 되자, “석가모니sakyamuni”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한역의 석가모니釋迦牟尼에서 온 것으로 석가족의 존귀한 분이라는 뜻이며, 석가족의 성자聖者라는 뜻으로 줄여서 석존釋尊이라고도 합니다. 부처님도 코따마성의 깨달은 자라는 의미로 “코타마 붓다Gotama Buddha”라 불렸습니다. 또 석가족 출신의 성자라고 하여 “샤카무니”라 하기도 합니다.
 샤카족의 본거지는 카빌라바스투라는 성城인데 석존은 이곳에서 20km 떨어진 룸비니에서 탄생하였습니다. 마야부인이 출산하기 위하여 친정인 콜리야족의 성城으로 가는 도중이었다고도 합니다. 태어난 해에 대해서도 남방과 북방의 설이 100여년 차이가 납니다.(부처님 시대는 기원전5~6세기) 현재 사용하는 불기 2558년은 1956년 세계불교도대회에서 부처님 입멸후 2500년으로 환산한 것으로 부처님 탄신은 여기에 80년을 더하여 2638년이 됩니다.
 싯달타 태자 탄생일에 대해서 남방과 북방이 차이가 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인도의 음력으로 두 번째 달인 바이샤카월의 후반 8일 또는 후반 15일이라고 하는데, 이를 태양력으로 환산하면 4, 5월이 됩니다. 중국 한국에서 부처님 오신날을 4월 8일로 하는 것은 여기에 유래합니다. 남방 불교국가들에서는 베샤카달의 만월이 되는 날에 베샤카제를 지내면서, 불탄·불멸·성도를 함께 모십니다.
 
 부처님의 탄생에 대해서는 많은 경전에 설해져 있습니다.
 태자는 샛별이 나타났을 때 마야부인이 나뭇가지를 휘어잡으니 곧 오른쪽 옆구리로부터 태어나 땅에 떨어져 일곱 걸음을 걷고는 “하늘 위 하늘아래 내가 오직 존귀하도다. 삼계가 다 고통스러우나 내가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수행본기경')

라는 탄생게誕生偈를 읊으셨다고 합니다. 이 탄생게에는 인간은 자신의 업으로 태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불도를 이루어 삼계의 고해에 빠져 있는 중생들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이 들어 있습니다. 이 탄생설화에서 오른쪽 옆구리로 탄생한 것은 인도전통에서 인간의 탄생설화에 관련된 것입니다. 인도 바라문 사회에서는 카스트제도에서 그 계급에 따라 탄생에 차이가 있으니, 바라문계급은 어머니의 입으로부터 낳고, 왕족이나 무사 계급은 배꼽으로 낳고, 평민은 생문으로 낳고, 노예는 발바닥으로 낳는다는 탄생설화가 있습니다. 이 설화에 의하면 태자는 왕족이므로 어머니의 배꼽(혹은 겨드랑이)에서 낳아야 하는데, 이에 대하여 고따마싯다르타는 이러한 브라만 신神의 의지에 의해 탄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업業에 의해 탄생함을 천명하고자 배꼽이 아닌 옆구리로 탄생하고, 그것도 옳고 바름과 중도를 의미하는 오른쪽 옆구리로 탄생하는 것입니다.
 또한 일곱 걸음 걸었다는 것도 어린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었다는 다소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치부해서는 안 되고, 이 설화가 말하고자하는 의미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중생들은 육도를 윤회하면서 생로병사 고해에 빠져 있는데 장차 부처가 되어 이러한 6도의 윤회를 끊고 해탈을 이룰 것이기 때문에 7보를 걸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도는 바로 뒤에 나오는 게송에서 “삼계가 다 고통스러우나 내가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는 게송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 마야부인은 출산 후 곧 사망함에 따라 태자는 이모 마하파사파제(마하푸라자파티)에 의해 양육되었습니다. 이 분은 후에 싯달태자가 정각을 이루어 부처님이 되자, 찾아와서 석가모니 부처님께 간청하여 귀의함으로써 최초의 비구니가 되는 분입니다.
 유년시절은 태자로서 자질을 키우기 위해 문무文武의 공부工夫를 비롯하여 96가지 공부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 공부로도 풀지 못한 인생문제를 안고 많은 사색을 하셨습니다.
 섬세하시고 내향적이며 감수성이 강한 태자는 어릴 적에 농경제農耕祭에 참석하고 나서 세상의 무상함을 알게 된 일, 사문유관四門遊觀을 통하여 동쪽에서 노인을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늙고 추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남쪽 성문에서 중환자를 보고 병고病苦를 알게 되고 서쪽 성문에서 죽은 사람을 보고 생명의 덧없음을 알고 노·병·사의 고통을 알게 된 태자는 비탄에 잠기게 됩니다. 북쪽성문에서 세속의 고뇌와 증오, 더러움과 괴로움을 떠난 출가 수행자를 보고 커다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세 개의 궁전에서의 생활은 매우 풍요롭고 즐거웠지만 방금 전까지도 요염한 자태로 춤을 추며 노래하던 무희들이 눈앞에서 잠에 떨어진 채 인간의 모든 추한 모습을 거침없이 노출시킨 장면을 목격, 이 추한 모습을 본 태자는 자신의 육체의 세속적인 생활을 부정하고 무상한 것이라는 혐오감에 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늙고 병들고 죽음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불안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못합니다. 인간은 왜 죽는가? 왜 생각대로 되지 못하는가? 등등...
 야수다라와 결혼하고 라후라라는 아들이 태어나자 출가하여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그라하(왕사성)로 갑니다. 그 당시의 출가 수도자들을 보았고, 육사외도등 여러 외도 등을 보았습니다. 아라다칼라마로부터 무소유처(스스로에게 속하는 것은 없다는 뜻으로 이는 자손이나 재산은 물론 소유품이나 도구까지도 가지지 않는, 다시 말해서 세간에 대한 모든 욕망을 버리는 경지)의 가르침을 받고 얼마 안가서 그 가르침을 체득 나와 같이 제자를 통솔해줄 것을 제의 받으나, 이 가르침은 정각에 이르는 길이 아니다라고 하며 그에게서 떠납니다. 이어서 우드라카라마푸트라 선인을 찾아 비상비비상처(표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삼매의 경지)의 가르침을 듣지만 만족하지 못한 채 떠납니다. 
 그 후 6년 동안 난행고행을 하십니다. 결국은 고행을 버리시고 때 묻은 몸을 씻고 음식을 들어 기력을 회복한 다음, 가야성에서 가까이에 있는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 선정에 드시고 어느 날 샛별이 뜰 때 도를 통하셨습니다.
 부처님이 설한 가르침은 응화신의 석가모니불이 설하신 아함부의 경설과 노사나불의 화엄부경전을 비롯하여 반야부 방등부 법화열반부의 수많은 경전이 있습니다. 이처럼 무량한 가르침이 있게 된 것은 중생의 근기가 무량하기 때문이요,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결국 일체중생을 불도에 깨달아 들어가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곧 법화경 방편품에서는 부처님이 세상에 출세하신 본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 일체법문은 곧 부처님 일대一代 설하신 법문으로 배대하면 화엄부를 비롯하여 아함부 방등부 반야부의 법문이며, 법화열반부에 이르러 40여년의 미현진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본래 세운 서원이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나와 같이 평등하여 다름이 없게 하려 함이라. 내가 옛적에 서원한 바와 같이 이제는 이미 만족함이라.”(금장본 방편품 제2, p.116)

아본립서원 욕령일체중 여아등무이 여아석소원 금자이만족
我本立誓願 欲令一切衆 如我等無異 如我昔所願 今者已滿足

 방편품에서는 이와 같이 당신이 출세하신 서원이 만족하게 이루어졌음을 밝히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는 부처님은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셔서 부다가야에서 성불하신 부처님이 전부일까.
 제불이 출세하신 본뜻은 일체제불 과거 현재 미래의 제불 그리고 석가불(오불장 五佛章)이 모두 같은 법식으로 중생을 교화하시니 제불의 도는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래수량품에 이르면 부처님도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영원하시다고 선언하게 됩니다. 곧 부처님도 이미 과거 헤아릴 수 없는 시절에 불도를 이루셨고 가야성에서 성불을 보이신 것은 사바세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교화법식의 하나였음을 밝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하시기를,

 『석가모니불은 석씨의 궁전을 나와 가야성에 멀지않은 도량에 앉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생각함이라. 그러나 선남자야 나는 실로 성불해옴이 한량없고 가이없는 백천만억나유타아승지겁이니라. 하시고 비유컨대 오백천만억나유타아승지의 삼천대천세계를 가령 어떤 사람이 부수어 가루로 하여 동방오백천만억아승지의 나라를 지나서 이에 가루 하나를 떨어뜨리되 이와 같이 하여 동쪽으로 가서 이 가루를 다 떨어뜨렸다면 모든 선남자야 생각이 어떠하뇨. 이 모든 세계를 생각하여 헤아려서 그 수를 알 수가 있겠느냐』(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02)

오백진점겁의 비유를 들어 부처님은 구원겁 전에 이미 성불하셨다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는 고로 방편으로 열반을 나타냄이나 그러나 실은 멸도하지 않고 항상 이에 머물러 법을 설함이라.”
(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18)

위도중생고 방편현열반 이실불멸도 상주차설법
爲度衆生故 方便現涅槃 而實不滅度 常住此說法

이라 하여 부처님은 영원히 멸하지 않고 법을 설하지만,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방편으로 멸도를 보이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수명이 무시무종이신 구원실성을 말씀하시고 그렇기 때문에 일체 모든 중생의 수명도 진실된 생명의 실상에서 보면 영원한 것입니다.
 참되고 진실된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한량없는 생명을 바르게 보고 큰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부처님의 수명이 무시무종이신 구원실성을 말씀하시고 그렇기 때문에 일체 모든 중생의 수명도 진실된 생명의 실상에서 보면 영원한 것입니다.

 초파일에 등불을 밝히는 것을 연등회라고 합니다. 그 기원은 부처님 당시 가난한 여인 난타가 등불을 부처님께 올린 일 부터라고도 하고, 부처님 당시 등불을 켜서 포살을 하고 계를 설한 데서 유래했다고도 합니다. 등불은 어둠을 밝히듯이 미혹한 마음을 밝히는 지혜의 광명으로 우리의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부처님과 불탑 경권에 등불을 켜 공양하는 것이야말로 무량한 공덕이 된다고 합니다.
 근본도량 장흥의 불사는 우리의 영산법화사 총림을 건설하기 위해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총림을 중심삼아 2세들이 정직하고 근면하게 법화경 수행을 원만히 하도록 그 터전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번 초파일은 이런 우리의 염원을 연등에 담아 기원합시다.

 법화행자 여러분!
 초파일 자비광명의 등불로 법화경의 무량공덕과 부처님의 가피가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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