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영산법화종 영산법화사

구원실성 석가세존의 불력 · 법력이 넘치는 곳

월간법문

불기 2560년 06월 - 부처님 사리탑을 공양함 ; 모든 법이 본래부터 공적하다.諸法本來空寂 - 행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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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산법화사 댓글 0건 조회 6,056회 작성일 19-08-2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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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묘법연화경

 법화경에서 탑塔은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경은 부처님 본회本懷의 정법을 설하므로, 그 법이 참으로 진실됨을 증명하기 위하여 다보여래의 다보탑이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또한 법화경에서는 여래가 구원겁 전에 성불하신 여래의 실상을 밝히고 있어서 이 경을 실천하는 곳에 탑을 세워 공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법화경 곳곳에서 삼세에 출현하시는 부처님이 정법을 설하고 입멸에 들면 사리탑을 세워 공양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법화경의 탑은 부처님 정법의 상징으로 다양한 탑들이 설해지고 있습니다.
 먼저, 「견보탑품」에서 다보탑이 솟아오른 것은 다보여래의 지극한 서원으로, 시방국토 어디든 법화경을 설하는 곳이 있으면 이 탑묘는 이 법을 듣기 위하여 그 앞에 솟아올라 그 진실함을 증명하고 거룩하다고 찬탄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정성으로 법화경을 수지하고 설하는 곳에는 이와 같이 여래가 오셔서 이 법을 찬탄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잊지 않고 호념護念하시는 것입니다. 「견보탑품」에서는 다보여래의 출현으로 보탑이 솟아올라서 적문迹門의 삼세 부처님 정법이 진실함을 증명하였다면, 「분별공덕품」에서는 본문本門 설법으로 모든 부처님이 다 구원겁전 성불하신 부처님으로부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출현한다는 여래의 진실을 밝혀서 이제 법화경이 설해지는 곳은 어느 곳이나 도량이므로 탑을 세워 장엄하도록 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법화경에는 곳곳에서 부처님의 사리탑이 등장합니다.  「서품」에는 방광을 통하여 부처님 일대의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부처님께서 정법으로 교화하시고 열반에 드시자 대중들이 칠보의 사리탑을 세워 공양하고 장엄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으니, 이는 세세생생 우리불자의 의무임을 지혜의 광명을 통하여 현현하신 것입니다.
  「방편품」(금장본 '법화삼부경', p.122-124 참조)에서는 부처님의 출세하신 본회가 일체중생을 불도로 이끌어 들이기 위함이었으므로, 보탑으로 부처님 사리탑을 세워 갖가지 보배로 장엄하고 공양하는 것도 불도를 이루는 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린아이가 소꿉장난하면서 부처님사리탑을 공양하는 일도 불도를 이루는 길이 된다고 설하고 있으니, 그 보탑을 공양하는 작은 선심善心이 연인불성緣因佛性이 되어 불도를 이루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바달다품」에서도 또한 보탑을 세우고 여기에 공양드리는 것이 불도를 이루는 길임을 제바달다 선인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오역죄를 저지른 악인으로 널리 알려진 제바달다가 옛적 선지식으로 태어나 '묘법연화경'으로 옛 석가모니를 제도한 적이 있고, 그 공덕으로 미래세 보살도를 행하여 불도를 이루어 천왕여래가 된다고 합니다. 천왕여래는 다시 20소겁이나   '묘법연화경'으로 널리 중생들을 제도한 후 열반에 드시니 이와 같이 보탑에 모시고 사리탑을 장엄하여 공양한 불자들이 삼승의 불도를 이루고 끝내 불퇴전에 이르러 불도에 나아간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법화경을 설하는 곳에는 다보여래가 이 법을 증명하기 위해 탑을 일으켜 오셔서 정법을 증명하고, 이러한 정법이 행해지는 곳에는 어느 곳이나 탑을 세워 공양하면 이 탑에는 여래의 전신이 있으므로 여래를 공양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와 같이 여래를 공양하는 법공양만큼 큰 공덕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영산법화사의 세계평화 불사리탑은 이와 같이 두 가지 일을 모두 겸하고 있는 성지입니다. 이곳은 우리가 매일 부처님 정법을 수지하고 실천하는 도량인데다가, 부처님의 전신이 들어 있는 사리탑을 세우는 것이니 참으로 큰 불사입니다.
 우리 조사 큰스님께서는 일찍이 불기 2513년 태세 기유년 8월 29일 장흥의 본당에서 이러한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정법홍포와 국태민안 그리고 영산법화사의 만년 대계를 위하여 불사리탑을 세우기로 서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유지를 받들어 불사를 시작하였고, 지금으로부터 9년 전 불기 2551년(2007년) 10월 3일 개천절 상달에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 성불산에 위용도 당당하게 세계평화 불사리탑을 건립하였습니다.
 부처님의 사리탑을 장엄하고 공양하는 것은 부처님의 정법인   '묘법연화경'을 실천하는 것으로, 곧 우리 법화행자의 의무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교화방편을 베풀어 우리를 제도하시는 부처님이 교화를 다 끝내고 반열반般涅槃에 들면, 중생들은 사리탑을 세워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고 정법을 잘 받들어 실천하는 길이 남아있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이 입멸한 후 부처님의 유훈을 실천하는 길임을 법화경에서는 이와 같이 부처님의 뜻을 실천하는 법문이 곳곳에서 설해져 있습니다.
 '묘법연화경' 견보탑품에는 “내가 멸도한 후 나의 전신을 공양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큰 탑을 일으켜 세우라.”고 하셨으니 이와 같이 혁혁한 유칙은 천인 대중 중에서 특히 모든 비구에게 고칙告勅하신 금언金言입니다. 대저 불법 중에 출가한 모든 비구 중에 그 누가 감히 이 봉조鳳詔를 어길 것이며 기탑공양起塔供養의 대불사를 등한 시 할 것이뇨. 본래 보탑 건립은 다보불의 일대서원一大誓願이었지마는 동시에 석가모니 세존의 금구金口 범음梵音이기도 합니다. 고불古佛의 서원과 금불今佛의 설법이 다 같이 내세의 비구 중에게 보탑건립을 엄장嚴獎하시고 엄명嚴命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법화경에는 삼세 부처님이 한결같이 부처님의 사리탑을 세워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세 법의 증표로 삼아 '묘법연화경'의 부처님 정법을 실천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리탑을 장엄하고 공양하는 것은 법화행자의 수행이고 불도를 이루는 길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바세계에서 이러한 부처님의 정법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체법의 실상을 잘 알아야 합니다. 법화경의 서경인 '무량의경'에서는 일체법이 공함을 알아야 진실을 알 수 있다고 설합니다.
 
 모든 법이 본래부터 공적하건마는 바꾸어 말해서 머무르지 아니하며 순간순간에 나고 멸한다고 설하였노라.('무량의경, 설법품' 금장본 p.1058)
제법본래공적 대사부주 염념생멸
諸法本來空寂 代謝不住 念念生滅

 불교에서 “일체법이 무상無常하다. 공空하다”고 하여, 매사에 불교는 소극적이라고 비평하는 말을 곧잘 듣게 되는데, 아닌 게 아니라 불교는 무아無我니 아공我空이니 하는 말을 많이 합니다.  세존께서는 교단敎團에 들어오려는 사람에게 대해 제일 먼저 아집我執을 버려야 한다고 무아無我를 설하셨고 자기 자신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고 아공我空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집을 버리고 무아가 되었을 때야말로 비로소 아름답고 즐겁고 평화로운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꺼리는 ‘나’란 탐욕貪慾, 진에瞋恚, 우치愚癡에 더럽혀진 소아小我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와 같은 아집이 맹렬한 형세를 떨치고 있는 한, 사회의 평화는 끝내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법화경은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십여시十如是로써 설하는데 그 십여시의 이치를 한마디로 간단히 말하면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합니다.

 우리가 범부의 눈으로 보아 실제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을 부인했을 때, 거기에 일체의 모든 것이 참된 상을 가지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집착된 나-소아小我를 버리지 않으면 참된 나-대아大我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일체를 부인하고 공에 철저했을 때 그것은 허무虛無가 아니라 공의 깊은 속에서 그 무엇인가가 참된 상을 가지고 나타나 옵니다. 이것을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실재實在인 것입니다.
 법화경에서는 진공묘유를 설합니다.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이란, 이 진공묘유의 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앞서 말한 부처님의 상도 이 진공묘유의 법칙에 의해 생각해 알아서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상은 이러한 진실한 공을 알았을 때 깨달아 들어올 수 있습니다. 번뇌에 물들어 있는 중생의 마음은 탐내고 화내고 어리석어서 제법이 본래 인연 따라 생겨서 인연 따라 변하고 멸해서 없어지는 이치를 모르고 집착합니다. 그러므로 이 마음을 가만히 가라앉히고 선정에 들어가 보면 참으로 무상하고 무아이고, 인연 따라 일어나는 허망한 것이요, 자성이 없고 집착할 것이 없어서 마음에 소득所得이 없으니 진실한 공空한 경지에 들어갑니다. 이러한 공한 경지를 보게 되면 이제 일체 제법이 다 제각각의 인연 따라 일어난 임시로 생긴 것 가假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혜로 보는 안목이 생겨야 비로소 부처님 정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안목을 혜안慧眼이라 하고, 혜안을 닦아나가면 법안法眼이 생겨서 일체법을 이해하고 마침내 불안佛眼을 점차 갖추게 됩니다. 우리는 법화경에서 이 세상의 일체법이 이와 같은 모습, 이와 같은 성품, 이와 같은 본체, 이와 같은 잠재적인 능력, 이와 같은 작용, 이와 같은 원인, 이와 같은 조건, 이와 같은 결과, 이와 같은 보 받음, 이와 같은 본말구경 등임을 들었습니다. 이 실상의 법문은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이를 법계에 비추어 깨달아야 불안의 안목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러한 불안으로 우리 중생을 보아 오탁악세에서 오욕락에 물들어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모든 중생을 다 불도에 들어오도록 이 법화경의 육근청정 법문을 여신 것입니다.     
 우리는 법화경을 실천하는 도량이 성불산에 펼쳐져 있습니다. 우리 모두 부처님 사리탑에 법화경을 지송하여 법공양을 드리고 육근청정 법화행자의 길로 나아갑시다.
 말법세상에서 우리가 숭앙崇仰하는 바는 오직 구원실성의 석가모니불이요, 믿는 경은 실대승 말세구원의 묘법연화경이며, 성불의 정법正法 묘법연화경입니다.

 영산법화사 사부대중 여러분!
 댁宅내에 법화경의 무량공덕과 부처님의 자비가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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